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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5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금융당국 제재가 부당하다며 낸 행정소송에서 6년 만에 승소했다. 이에 따라 9월로 예정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항소심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에서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를 입증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는 검찰로서는 시작 전부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생겼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삼성바이오가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제재시정요구 취소 소송에서 “증선위의 처분은 위법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단독 지배했다고 봤기 때문에, 에피스를 종속기업으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것은 원고의 재량권 범위 내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증선위의 처분은 2014년까지의 회계처리에 제재 사유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처분의 기초가 되는 사실을 일부 오인함에 따라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이번에 취소하라고 판단한 제재는 2018년 11월~12월에 한 2차 제재다. 앞서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설립한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하고, 2015년 재무제표에 이 회사 지분 가치를 장부가액(2900억 원)에서 시장가액(4조 8000억 원)으로 근거 없이 변경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표이사와 담당 임원 해임 권고 및 과징금 80억원 부과 제재를 내렸다.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행정법원의 판결은 향후 이 회장의 형사재판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이 회장은 1심 선고에서 19개 관련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받았으며, 이 중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가담 혐의도 포함됐다. 1심 재판부는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젠과의 합작계약 내용을 은폐하거나 공개 범위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의 2015년도 회계처리도 적법하다고 봤다.
검찰은 지난 5월 항소심 공판준비기일에서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를 입증하는 데 힘을 기울이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검찰은 1심과 달리 외부감사법(외감법) 위반 쟁점에 대해 먼저 재판을 진행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1심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쟁점부터 시작하고 외감법을 나중에 하다 보니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1심에서 부당 합병 혐의에 집중했지만 유죄 판단을 얻지 못한 만큼 2심에서는 분식회계 혐의를 강조해 유죄를 입증하겠다는 전략을 설명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행정법원에서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관련 금융당국 제재 취소 판결이 나오면서 검찰 측은 촉박한 항소심 재판 일정에서 전략을 일부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항소심 재판부는 11월에 변론을 종결한 후 내년 2월 법관 인사가 나기 전 선고를 내릴 계획이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 변호사는 “형사 1심에서 이 회장이 무죄를 받은 데 이어 행정소송에서도 제재 취소 판결이 나왔다”며 “항소심도 70~80% 정도는 이 회장이 유리한 측면으로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분식회계는 회사의 가치에 대한 또 다른 속임수이기 때문에 그 부분이 지나치게 크면 비율 자체도 잘못됐다는 주장은 할 수 있다”면서도 “분위기상 대세를 뒤집기에는 어렵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전망했다.
다만 금융당국의 제재 취소 판결이 났지만 행정법원이 형사 1심과 달리 일부 회계 부분을 부정 혐의로 인정한 점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재판부는 “2015년 재무제표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구 삼성물산 합병일인 2015년 9월 1일 이후로 검토한 점은 재량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판결 이후 “판결주문상 전부 패소했지만 형사 1심과 달리 2015년 지배력 변경은 정상적 회계처리가 아니라고 판시한 점은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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