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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킷을 사지 말라’는 광고로 유명한 패션 기업 파타고니아가 올해는 ‘언패셔너블’이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패션과 유행에서 등을 돌리자는 이야기다. 언패셔너블 캠페인은 ‘패션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none of our business)’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사업(business)에는 관심이 없다는 중의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기후 대응을 위해 옷을 덜 사고 오래 입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50년 넘게 살아남은 패션 기업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긴 슬로건이다.
그러나 패션 기업이 반(反)패션을 외치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언패셔너블 캠페인’을 위해 한국을 찾은 제이크 세트니카(사진) 파타고니아 아시아태평양 환경·마케팅 매니저는 지난달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파타고니아는 ‘소비하지 말라’가 아니라 ‘더 잘 소비하자’고 말해왔다”고 설명했다. “원료 조달과 생산과정이 공정한지 기업에 정보를 요구하고 티셔츠가 10벌이나 필요한지 혹은 1벌로도 괜찮은지 자문해볼 것을 소비자에게 권한다”는 설명이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는 패션 산업에서 비롯된다. 전 세계 섬유 폐기물은 매년 60% 늘어나 2030년 1억 480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폐기물의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 매립돼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80배 강한 메탄을 뿜어낸다. 파타고니아는 소비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면서 ‘더 나은 소비’라는 선택지를 제시해왔다.
실제로 파타고니아는 제품 광고보다 환경 캠페인에 공을 들인다. 경상남도 통영의 잘피(오염 정화, 탄소 흡수 능력이 뛰어난 토종 해초)와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보존을 위한 해양보호구역(MPA) 지정 촉구 활동을 이어온 것이 대표적인 국내 사례다. 올 4월에는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다시입다연구소의 ‘21% 파티’에 동참해 언패셔너블 캠페인을 알리기도 했다. 21% 파티는 참가자들이 입지 않는 옷을 나누는 행사로 새 옷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에 대한 관점도 다르다. 세트니카 매니저는 “한국도, 호주도 의류 브랜드 다수가 세일 경쟁을 펼치지만 파타고니아는 동참하지 않는다”며 “판매를 늘리기보다 우리의 임팩트(영향력)를 키우는 것이 성장”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소비자들에게 죄책감을 안기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가뜩이나 복잡한 사회에서 패션 기업마저도 ‘당신이 잘못했다’고 하면 정말 싫지 않겠느냐”며 “소비자들을 떠밀기보다는 유기농 면이나 생물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옷을 수선해 오래 입는 이들을 격려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파타고니아는 이러한 ‘은근한’ 설득의 일환으로 올 11월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몰에 국내 최초의 의류 수선 특화 매장인 ‘퀄리티랩’도 열 예정이다.
이러한 행보는 품질에 대한 자신감과 맞닿아 있다. 수십 년을 입을 만큼 튼튼한 제품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도 ‘오래 입으라’고 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트니카 매니저는 “옷을 뒤집어서 안감의 바느질을 보면 품질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 파타고니아는 패션 업계 전반의 변화도 촉구해왔다. 그동안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이유다. 합성고무 없이 천연고무 서핑슈트를 만들 수 있는 ‘율렉스’ 소재를 업계와 공유해 보편화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도 협업해 세탁으로 인한 미세 플라스틱 배출량을 최대 60%까지 줄여주는 세탁기를 지난해 선보이기도 했다. 세트니카 매니저는 “호주 디자이너들에게 유기농 면 조달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는데 몇 년 후 실제로 해당 디자이너가 100% 유기농 면 드레스를 출시한 적이 있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파타고니아가 패션 업계에 문을 열어줌으로써 공정 무역 확산, 탄소 감축 등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소한의 생산과 환경 영향이 파타고니아의 목표”라면서 “패스트패션 브랜드까지도 친환경 라인업을 선보이는 등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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