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동메달은 모든 우크라이나인과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침공당한 조국에 올림픽 메달을 안긴 검객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을 토해냈다. 그는 30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한국의 최세빈(23)을 15-14로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가 획득한 첫번째 올림픽 메달이자 올하 하를란(33)의 생애 다섯 번째 올림픽 메달은 그렇게 완성됐다.
파리올림픽까지 오는 하를란의 여정은 기적과 같았다. 앞서 2023년 7월 하를란은 이탈리아 밀라노 펜싱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실격패를 당했다. 첫 상대로 64강에서 러시아의 안나 스미르노바를 만난 하를란은 15-7로 승리했지만, 경기 뒤 악수를 거부해 실격됐다. 세계선수권이 올림픽 예선을 겸한 터라 사실상 파리행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때 펜싱 선수 출신이기도 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특수 상황”을 이유로 개입하며 특별 자격을 얻어 파리에 올 수 있었다.
사실 세계선수권대회까지 가는 길도 쉽지는 않았다. 하를란은 2008년 베이징 단체전 금메달, 2012년 런던 개인전 동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단체전 은메달과 개인전 동메달 등 이미 4개의 올림픽 메달이 있는 베테랑이다. 하지만 그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은퇴를 고려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을 곁에서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는 올림픽을 가지 않는 게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다시 그를 무대로 이끌었다. 2023년 1월 튀니지 튀니스에서 열린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그는 올림픽에 대한 타오르는 열망을 느꼈다. 결국 그는 밀라노 대회 참가를 결정했지만, 1회전에서 운명의 장난처럼 러시아 선수를 만났다. 그리고 악수를 거부해 실격패했던 것이다. 내적 갈등 끝에 결국 악수 거부를 했던 그는 당시 분노, 슬픔,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를란은 그때 상황을 돌아보며 “제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며 “절망했고, 몇 시간 동안을 울었다.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결국 파리올림픽 무대에 섰다. 그야말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정신을 보여준 여정이었다. 동메달 결정전에 나선 그는 이날 그랑 팔레를 찾은 관중의 열렬한 응원을 받았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올하”를 연호하며 그의 도전을 응원했다. 경기도 하를란이 걸어온 길처럼 치열했다. 하를란은 이날 경기 중반까지 최세빈에 5-11로 일방적으로 밀렸지만, 역전과 재역전을 수차례 반복한 끝에 15-14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하를란은 메달을 조국과 가족에 바쳤다. “이 메달은 다른 메달과 다릅니다. 다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이 메달은 제 조국을 위한 메달이기 때문에 특별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 내 가족, 소녀들, 전쟁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메달은 특별합니다. 우리는 세계에 우리가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겨레 이준희·파리/장필수 기자 /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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