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두 달이 됐지만 여야가 ‘법안 강행처리→거부권 행사→재의결·폐기’라는 소모적인 의정활동을 이어가면서 민생은 뒷전이란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단독 처리한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 건의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이날 본회의에서 교육방송공사(EBS)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하는 등 5박6일에 걸쳐 ‘방송4법’을 모두 통과시켰지만 결국 재의결·폐기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민의힘은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할 것”이라며 “결단코 ‘방송장악 4법’이 시행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거부권 행사와 재표결로 방송4법이 최종 폐기되면 22대 국회는 지난 두 달간 총 다섯 차례의 본회의에도 제대로 처리한 법안은 없는 셈이 된다. 앞서 4일 본회의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도 거부권 행사와 재표결을 거쳐 결국 폐기됐다.
직전 21대 국회를 되돌아보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180석이란 거대 의석을 차지했지만 상황은 다르게 전개됐다. 개원 두 달 만이었던 2020년 7월 30일 당시 민주당은 ‘임대차 3법’의 핵심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처리한 바 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등 이견이 상당히 큰 법안이었지만, ‘거대 여당’ 구도였던 만큼 법 통과 하루 뒤 정부는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즉시 의결했다.
닷새 뒤인 8월 4일엔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체육 지도자의 갑질을 예방하는 이른바 ‘고(故)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19대 국회로 더 거슬러 올라가봐도 여야는 ‘8월 임시국회 소집’을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이면서도 무쟁점 2개 법안을 처리했다. 2012년 8월 1일 한국국제협력단법 개정안(국제빈곤퇴치기여금 일몰기한 연장)과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개정안(창업보육센터 사업자에 대한 관리 강화)이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반면 22대 국회는 8월에도 정쟁에 밀려 민생법안 처리가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내달 1일 당론 법안인 ‘전국민 25만원 지원법’(2024년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추 원내대표가 이날 “여야 간 합의가 안 된 법안이 일방적으로 본회의에 상정되면 국민에게 부당성을 알리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계속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만큼, 여야 대치 정국은 한층 더 가열될 전망이다. 노란봉투법과 25만원 지원법 또한 ‘상정·거부·재의결·폐기’ 과정을 거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 임명 문제도 또 다른 ‘뇌관’이다. 전날(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만약 정부가 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고 방통위 부위원장 후임도 임명할 경우, 즉시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 발의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국회가 생산성을 완전히 상실했단 비판이 제기되지만 여야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추 원내대표는 이날 야당을 향해 “거대 야당은 폭력적인 다수의 힘을 적당히 자제하면서 행사하라”며 “국민들께서 불편하고 대한민국 민생이 망가지고 있다”고 질타했다. 또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으로서 민생과 국가 미래 발전을 위해 각종 법률안과 정책에 관해 토론하고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반면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야당 단독 통과’라고 (일반적으로) 표현하는데 8개 원내 정당 중 7개 정당이 참여해 압도적으로 통과시켰으니 ‘여당 단독 반대’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결정할 시간이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압도적 찬성 의결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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