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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회 입법,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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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대중의 무관심이 아니라, 관심을 가질 틈조차 없게 만드는 팍팍한 현실이다.” 아론 바스타니(영국 정치평론가, 저널리스트)의 이 절규처럼, 많은 시민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게 하는 여전히 엄혹한 이 현실이 엘리트 중심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실패했다는 주요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수많은 국회의원(지방의원) 후보들과 대통령 후보들은 약속했지만 당선되고 나면 모르쇠로 돌변한다.

대한민국 국회를 탄핵한다

2023년 기준 기초생활수급권자는 2013년 약 135만 명에서 약 255만 명으로 증가했다(출처: 보건복지부, 낮게 책정된 기준중위소득 문제로 실제로는 위 숫자의 배에 이를 것이라는 유력한 견해가 있음). 차상위계층의 숫자도 전체 인구의 약 8%인 약 41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을 합하면 빈곤층은 어림잡아 대략 1천만 명으로 국민 10명 중 2명이나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 빈곤층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소득(자산) 양극화 또한 더욱 심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1962년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지만 서민의 삶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조선 왕조 시대와 일제 시대를 지나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대의제(선거제)를 실험한 지 70여 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대부분의 대중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틈조차 없게 만드는 냉혹한 현실에 포로로 잡힌 채 끌려가며 살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시민 삶터의 사정이 이러할진데, 어느 다선 국회의원의 말이 아연실색케 한다. 당선 2년차 이후로는 오로지 다음 선거 당선을 위해 공천권을 가진 당 대표와 지역구 관리에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한다. 지금의 대의제나, 지금의 선거제나, 지금의 정당제에서는 꽤 괜찮은 개인이 국회에 진출한다하더라도 이러한 법적·정치적 제도하에서는 문제가 개선될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이런 후진적 정당정치의 구조적 고질병 앞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하여 저소득층 빈곤의 문제, 소득(자산) 양극화의 문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 지방분권과 지역자치의 문제, 청년실업과 저출생의 문제, 기후위기·핵 위기의 문제, 전쟁반대와 평화의 문제 등 산적한 민생 현안과 시대적 난제에 임기 내내 전심전력을 기울이며 그 해결에 앞장설 수 있겠는가?

역대 국회의원들과 지방의회의원들, 역대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대통령들은 대한민국이 세계 1위의 자살률, 세계 1위의 노인 빈곤율과 세계 최저의 합계출산율(통계청, 2023년 0.72), 아시아 1위의 이혼율, 노동시간 세계 2위, 세계 최악의 산재 국가, 세계 최고 수준의 청소년 자살률과 최저 수준의 행복지수, 상하위 계층의 소득(자산) 격차, 비정규직 양산 등 각종 기록을 쏟아내고 있는 동안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멀리 돌아볼 것 없이 지난 21대 국회(2020.5.30.~2024.5.29.)의 4년을 반추해보자. 21대 국회에서 시급한 현안 해결을 위해 구성된 국회연금개혁특별위원회, 기후위기특위, 인구위기특위, 정치개혁특위 등 모든 특별위원회가 시간을 끌면서 혈세만 낭비하다 아무런 성과없이 막을 내렸다.

2023년 2월 출범한 기후위기특위는 1년 2개월여 동안 총 6차례 회의했다. 그리고 2023년 8월 탄소중립 및 재생에너지 정책을 파악하기 위해 6박 8일 일정으로 영국, 독일, 네덜란드를 다녀왔다. 국회 첨단전략산업특위가 한 일도 2022년 12월부터 약 1년간 4차례 회의 뿐이었다. 이들은 유럽에 진출한 한국의 배터리 공장을 살펴본다며 2023년 10월 폴란드와 헝가리로 4박 6일간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기후위기특위, 첨단전략산업특위 모두 회의보다 해외 출장에 더 긴 시간을 보냈다. 무능, 무책임, 후안무치(厚顔無恥) ‘3무(無) 국회’라 아니할 수 없다.

<에밀>, <사회계약론>을 쓴 18세기 사상가 루소 또한 일찍이 선거제(대의제) 민주주의의 허상을 직시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 국민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자유로운 건 의원을 선출할 때뿐이며 일단 선출이 끝나면 그들은 노예가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된다.”

시민의회, 새로운 민주주의의 동력

바야흐로 우리의 진정한 대표자가 누구인지 돌아봐야 할 시대가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거는 귀족적이고, 추첨은 민주적이다.”는 말을 했다.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제는 돈과 사회적 인지도를 갖춘 엘리트에 국한된 대표자를 선출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제도여서 태생적으로 평범한 시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운명을 타고 났다. 특히 공천권을 휘두르는 자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도록 만드는 지금과 같은 국회(지방)의회 의원 선출 방식 하에서는 시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진정한 대표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본과 권력의 기득권이 촘촘이 펼쳐 놓은 그물에 취임 몇 개월이 지나면 점점 얽매이게 되고 삼류 정치 시스템 하에서 자기들만의 권력 유지와 직업화된 정치의 유혹에 빠져 처음의 뜻을 잃고 쉽게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 위기의 시대는 주권자가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을 확보하기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직접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수밖에 없다. 대리통치가 아닌 자기통치! 우리 스스로 정치를 하여야 한다.

더는 우리의 생존을, 우리의 삶을 기득권자가 된 엘리트 국회의원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 그들의 선의에만 호소했다가 매번 뒤통수를 맞았지 않은가? 1894년 동학농민혁명,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2016년 촛불혁명의 역사와 정치꾼들의 행태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대안은 뭘까? 바로 시민의회(市民議會, Citizens’ Assemblies)다. 시민의회는 이러한 대의제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방안 중 하나다. 이지문 교수(연세대)의 시민의회에 대한 정의를 빌리자면 시민의회는 ‘전체 시민을 통계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일반 시민 중에서 인구 통계학적으로 무작위 추첨 방식을 통해 작은 공중 차원의 시민의원을 선정해 공공의제에 관한 숙의를 보장하고 정부나 의회에 대한 권고 등 일정 부분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법적·제도적 대표 기구’로 정의할 수 있다.

▲아일랜드의 시민의회. ⓒPic: Citizens’ Assembly/Maxwells

시민의회의 뿌리 –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사실 시민의회 모델은 인류 역사에서 21세기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시민의회의 뿌리는 BC 6세기 고대 아테네의 집정관(archon) 솔론의 개혁에서부터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에 이르는 200여년간 아테네 민주정이 실시한 민회(the People’s Assembly)에 맞닿아 있다(이하 아테네 민주주의에 관한 글은 하태규 박사의 글 인용).

아테네 민주주의의 제1원리는 “인민에 의한 민주주의, 상설 총회 민주주의”였다. 외교, 전쟁, 재정, 공공사업, 시민권 심사, 상벌 축제 등 나라의 모든 주요 대내외 정책을 결정하는 민회는 이론상 모든 인민이 참여할 수 있었다. 민회는 연간 40회 개최되었다. 500인 평의회에서 10개 부족별 50인의 평의원들로 구성된 상무위원회가 10분의 1년씩 월별로 돌아가며 각각 36일 동안 4번의 민회의 개최를 책임졌다.

입법 과정은 이미 편찬된 법전의 법조문들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입법 배심원의 재판 절차를 통해 진행되었다. 입법배심원의 재판 회부 여부도 민회의 연례적 “법률안 총괄 심의”로 결정하였고, 민회에서 회부가 통과되면 그 법률들 각각의 수정이 입법배심원에서 최종 결정되었다.

이 시민 법정은 민회와 나란히 매년 초에 자발적으로 등록한 시민 6천 명 중 민사, 형사, 정치 등 소송 종류와 중요도에 따라 그때그때 추첨으로 선정되는 201, 301, 501, 1001명 등의 홀수 배심원으로 구성된 대규모 시민이 참여하는 또 다른 핵심적 민주주의 기관이었다.

여기서 아테네 민주주의 제2의 원리가 “연례적 무작위 추첨”이라는 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민회를 제외한 입법 배심원, 시민 법정, 500인 평의회, 행정관위원회 등 나머지 모든 민주주의 기관들은 원칙적으로 연례적 혹은 수시 추첨을 통해 충원되었다. 아테네에는 5세기에 행정관에게, 4세기에는 민회, 시민법정, 평의회의 시민에게 보수를 지급했다. 이것은 모든 평범한 시민의 정치에 참여할 동기와 조건을 부여하여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데 공헌했다.

마지막으로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 동력은 인민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지식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완성된 형식이라기보다 200년 동안 인민의 능력과 더불어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정치 형식이자 원리였다. 그래서 인민의 능력은 점점 더 발전했고, 더불어 사회 경제적 혁신 능력과 생산성은 더욱 고조되었다.

아테네는 “상설 총회와 연례적 추첨의 원리”에 근거한 인민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며, 대다수 구성원의 지식의 유례없는 대규모 집합과 소통을 통해 사회 경제적 혁신 능력과 생산성을 높였던 것이다. 덕성이 좋은 제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덕성을 기른다.

시민의회, 21세기 참여·숙의·풀뿌리·직접 민주주의와 만나다

그렇다면 시민의회의 장점은 무엇일까? 시민의회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의 무작위 추첨제와 유사하게, 시민의원을 인구 통계학적으로 무작위 추첨방식으로 선출하기 때문에 계파 정치와 국민 분열과 큰 선거비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계층별, 직능별, 지역별, 성별로 골고루 선출될 수 있기 때문에 기득권 엘리트 중심이 아닌 진정한 국민 여론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다.

또한 시민의회 의원은 전문가들의 상반된 의견을 듣고,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수시로 국민의 의견과 제안을 접수받고 수준높은 숙의와 토론을 거치기 때문에 당리당략이나 지역주의나 집단이기주의 등으로부터 벗어나 균형잡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해당 의제에 대해 1회 선출되고 임기가 1년 내외이기 때문에 특권이 주어지거나 이권에 개입할 수 없으며, 다음 선거를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언론이나 자본이나 특정 권력집단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시민의회는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풀뿌리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 지방분권주의 등의 장점을 결합한 제도의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시민의회 사례는 289개(OECD 회원국 282개, 비회원국 7개)에 이른다. 서유럽과 북미주, 호주, 뉴질랜드 등 여러 선진 민주국가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와 남미(브라질, 칠레, 페루, 멕시코, 콜롬비아, 파나마 등) 여러 나라에서도 개최된 바 있다.

아이슬란드 시민의회와 아일랜드의 헌법회의와 시민의회,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BC주)의 선거제도 시민의회와 온타리아주 시민의회, 네덜란드 시민의회, 그리고 기후 위기를 다룬 프랑스의 기후 시민의회, 영국 기후 시민의회 등 시민의회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시민의회’라는 명칭으로 운용된 사례는 없었지만, 추첨을 통한 구성 및 일정기간 숙의 차원의 유사 사례로 중앙정부 및 국회 차원 공론회위원회를 통해 시민의회의 운영을 간접적으로나마 이미 몇 차례 경험한 바 있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국무총리훈령 제690호),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2018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실시한 선거제도개혁 500인 회의(2023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실시한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2024년)가 그것이다.

시민의회는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의 길을 열어가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명실상부한 국민주권 국가를 만들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 시민의회는 21세기 민주주의의 핵심이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의 하나로 떠올랐다.

시민의회가 소집되면 시민의원들은 해당 의제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교육, 그리고 토론 기회를 보장받는다. 개회 기간은 토론 주제에 따라 통상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내외이다. 통상 주말을 이용하고 일당, 숙식, 교통비 등 필요한 경비를 제공한다. 이렇듯 충분한 시간 충분한 정보, 그리고 자유로운 토의를 통해 초반 모임에서는 여러 갈래로 갈리던 견해가 점차 합의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시민의회 사례를 보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싸움만 하다 끝난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속성상 시민의회에 맡기는 게 바람직한 사안은 다음과 같다. 시민의회는 ①국민의 요구가 커도 국회에서는 당리당략 때문에 손대지 못하거나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의 취지에 비추어 고위공직자인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의 이해충돌우려가 있는 사항인 헌법개정, 선거법개정, 정당법개정의 문제 ②여야 정파적으로 의견차이가 너무 큰 검찰 개혁이나 각종 특검법안, 노란봉투법안, 대통령 탄핵심판 요구 등의 사안 ③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 정책이나 미중패권경쟁과 북핵 시대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처럼 선출의회의 임기보다 훨씬 긴 호흡의 초당파적 대응이 필요한 중대정책 사안 ④안락사 허용여부 등과 같이 가치판단이 필요한 사안 등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글 참조).

시민의회 입법(立法)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정부나 의회에 대한 권고 등 일정 부분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법적·제도적 대표 기구로서의 시민의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시민의회의 방향과 관련하여 학문적으로는 시민선거배심제, 기존 양원제 중 하나의 원을 추첨시민의회로 하자는 견해, 대의제를 폐기하고 추첨시민의회로 기능별 그룹을 구성하자는 견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상설 시민의회를 구성하고, 기존 3부와 더불어 제4부의 성격을 띤 최고권력기관으로써 헌법재판소를 대체하자는 견해 등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이지문, 한국 시민의회 사례와 시민의회 방향, 165~171, 시민의회 국제심포지움 자료집).

이 글에서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는 헌법 제40조의 규정을 개정하여 시민의회에 국회와 함께 입법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논외로 하고, 헌법 제40조를 개정하지 않는 전제하에 현실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안 중에 외국의 사례처럼 헌법 개정이나 선거제도 관련 법 개정, 주민자치법 제정 등 법률 제(개)정 절차에 시민의회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시민의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일반법이나 조례를 제정하는 방안만을 간략하게 고찰하기로 한다.

1. 헌법개정 추첨시민의회

우리는 9차 개헌(1987년) 이후 40년 가까이 이르는 동안 시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개헌을 한 번도 하지 못하였지만 우리와 달리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독일은 1949년 이후 66회, 90년 통일 이후 31회나 개헌했다. 우리도 독일처럼 국가과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내기 위해 개헌의 과정과 절차를 개선한 ‘국민참여에 의한 개헌절차법’을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실히 요구된다.

이미 세계적으로 아이슬란드의 국민의회, 헌법평의회, 그리고 아일랜드의 헌법회의 및 시민의회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헌법 개정 과정에 국민이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9차례의 헌법 개정 과정은 대부분 정치권이 주도했고 국민이 참여할 기회는 막혀있었다. 지금까지 진행된 헌법 개정 과정이 주로 권력자들의 의도에 따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의 헌법 개정은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헌법 개정안을 만들 수 있는 역사상 첫 번째 기회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국민주권주의는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원리이다. 따라서 헌법 결정권자인 국민이 헌법개정안 작성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헌법 정신을 구현하는 지극히 당연한 민주정의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헌법개정 시민의회라는 발상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대선 국면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여 2017년 4월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세 대통령 후보가 헌법개정 시민의회 또는 국민참여개헌기구를 통한 개헌을 공약하게 되었다. 이후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월 자신의 개헌 공약 준수를 위해 몇 차례 약식 숙의형 개헌토론회를 거쳐 대통령 발의 헌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약식 토론회였지 시민의회라고 보기 어려웠다. 더구나 이 개정안은 개헌 의결 시한 마지막날인 2018. 5. 24. 국회에서 다수파인 야당의 무시로 본회의 표결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기각되고 말았다(김상준 경희대 교수 글 인용).

한편 위 개헌안 이전에 폐기되었지만 조기 대선 정국 하에 개헌 바람이 불면서 2017.2.15.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 외 11명이 발의한 “국민 참여에 의한 헌법개정의 절차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5639)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률안의 내용을 톺아보면 헌법개정 시민의회를 구성하고 운영함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법률이 정하는 헌법개정절차를 위한 기구로 규정하고 이 기구로 하여금 헌법개정안 기초안 작성과 국민 여론 수렴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고,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소속으로 자문위원회와 시민회의(200~300명)를 설치하도록 하고, 이 기구의 의견서 및 보고서를 존중하여 헌법개정안 기초안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헌법개정안 기초안의 작성 과정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하여 시민회의를 두고 헌법개정안 기초안에 대한 토론, 자체 공론 조사 및 헌법 개정안 관련 국민 제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 작성 등을 하도록 하였으며, 시민회의 회원은 필요한 수의 회원후보자를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정하되 성별, 연령, 지역이 균등하게 배분하여 선출하고, 시민회의 회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예산의 범위에서 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 선거제도개혁 시민의회

현행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 선거구 확정일이 선거일 1년 전으로 정해져 있지만(제24조의2),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선거 직전에서야 정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는 선거일 41일 전에야 지역구가 결정되는 등 파행이 이어져 왔다. 국회의원 본인들이 선거구 획정이나 의원 정수, 선거제도, 비례대표의원의 비율, 정당법이나 정치자금법 등 의원들의 이해상충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서 현행처럼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이해충돌이요 어불성설이다.

이지문 교수는 선거제도개혁 시민의회를 1년 임기로 추첨을 통해 일정 수로 구성하고, 시민만이 참여해서 심의하여 결정하며, 결정 사항은 국회 본회의로 바로 상정하여 선거일 1년 전 선거구 및 선거제도가 확정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선거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정치 불신을 완화하며, 지금처럼 정당들의 밀실 거래나 기득권 고수 차원의 추진을 일정 정도 저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위 이지문 교수의 글 인용).

3. ‘시민의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조례)’ 제정

시민의회에 대한 일반법으로 ‘시민의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을 제안하는 견해가 있다(신용인 교수). 물론 시민의회에 관한 일반 법률을 제정하기 이전에 각 기초(광역)의회에서 예컨대 ‘OO구 시민의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할 수도 있다. 조례 제정 운동을 통해 시민의회를 각 시군구, 읍면동 지역부터 널리 홍보하고 함께 학습하며 연대하여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지역자치를 경험하고 조례 제정 후에는 시민이 제도화된 시민의회의 효능감을 실제 경험함으로써 시민의회의 입법 추진력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신용인 교수는 시민의회의 경우 대의제를 보완할 여러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정당성의 확보가 어렵고, 국민 대다수를 여전히 통치에서 소외시킨다는 두 가지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에 두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다층적 시민의회를 제안한다.

신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다층적 시민의회는 읍면동 단위의 주민총회, 기초자치 단위의 기초 시민의회, 광역자치 단위의 광역 시민의회. 전국 단위의 전국 시민의회 4계층으로 구성된다.

주민총회는 읍면동 주민으로 구성한다. 반면 기초 시민의회, 광역 시민의회, 전국 시민의회는 읍면동을 토대로 하여 추첨 선발의 방식으로 구성된다. 즉 기초 시민의회는 읍면동 주민 중에서 신청에 의한 추첨으로 선발하거나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한 시민의원으로 구성한다. 광역 시민의회는 추첨 선발된 읍면동 주민 중에서 다시 기초자치 단위에서 추첨 선발한 시민의원으로 구성한다. 전국 시민의회는 추첨 선발된 읍면동 주민 중에서 다시 기초자치 단위에서 추첨 선발하고 그렇게 선발된 주민 중에서 다시 광역자치 단위로 추첨 선발한 시민의원으로 구성한다.

이 경우 다층적 시민의회의 권한은 헌법상의 제약으로 인해 국회나 대통령에게 입법안 등을 청구하는 것에 그친다. 국회나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는 경우 여론 조성 등을 통한 정치적 압박만 가능하고 법적으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 하지만 법제화되어 있으므로 공신력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4. 읍면동 주민총회의 시민의회 역할 담당

신용인 교수는 다층적 시민의회를 제안하면서 읍면동 단위의 주민자치회를 읍면동 시민의회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현행 주민총회가 읍면동 시민의회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이에 공감하면서 이하에서 신용인 교수의 주장을 소개한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제40조에 근거하여 2023년 6월 기준으로 전국 읍면동 3506개의 3분의 1이 넘는 1411개 읍면동에서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의 특징으로는 주민자치위원 추첨 선발과 주민총회를 들 수 있다. 행정안전부의 2019년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및 설치·운영에 관한 표준조례 개정안'(이하 표준조례안)에도 반영되어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읍면동에서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주민자치위원 추첨 선발 방식을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주민자치위원 추첨 선발은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시민의원 추첨 선발에 대한 강력한 실증적 근거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주민총회란 해당 읍면동 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하여 주민자치 활동과 계획 등 자치활동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주민공론장을 말한다(표준조례안 제2조 제3호). 현재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읍면동에서는 통상 매년 1회 이상 주민총회를 열고 있다. 따라서 읍면동 단위에서는 직접민주주의 구현 차원에서 주민자치회를 읍면동 시민의회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현행 주민총회가 읍면동 시민의회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면 된다.

앞에서 시민의회 입법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간략히 살펴 보았다. 루소는 “덕성이 좋은 제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덕성을 기른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김상준, 2009). 엘리트 정치인들에게 나와 공동체의 운명을 전적으로 대리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 추첨 시민의회 의원이 되어 스스로 결정하는 시민의회를 조속히 법제도적으로 도입하여야 한다. 좋은 제도 하에서 민주시민으로서의 덕성과 능력을 함양하고 나의 의사결정과 행동반경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체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직접민주주의적 자기통치(自己統治)를 실현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아니 한반도가 자유롭게 연합한 인간들의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로 도약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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