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 사업장 곳곳에서 기부채납 문제를 둘러싼 정비사업 조합과 서울시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사업 추진이 난항을 빚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가 재건축 사업성을 떨어트린다며 조합이 수용 가능한 범위의 공공기여를 제안하는 등 합리적인 조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시범 아파트 재건축은 이른바 ‘노치원(노인과 유치원 합성어)’으로 불리는 데이케어센터를 기부채납으로 들이는 문제로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데이케어센터는 경증 치매나 노인성 질환이 있는 노인이 미술·음악 등 수업을 듣는 운동 치료 서비스 시설이다.
서울시는 2022년 11월 이 단지를 최고 65층, 2500가구로 재건축하는 신속통합기획안을 확정했다. 용적률 최대 400%, 최고 층수 65층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요구했다. 소유주들의 반대가 이어지면서 사업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이 데이케어센터를 문화시설로 변경하는 내용의 안을 제출했지만 서울시가 최근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반영해 보완하라고 결정하면서 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소유주들은 한국자산신탁이 데이케이센터 설치 안을 알고도 뒤늦게 통보했다는 입장이다. 소유주들은 한국자산신탁의 업무 진행 방식이 사업 지연 및 혼선을 가중시켰다고 판단하고 신탁 등기 말소, 신통기획 철회까지 고려하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3구역 재건축도 기부채납 문제로 서울시와 대치 중이다. 압구정3구역은 압구정 정비사업 최대어로 꼽히는 프로젝트로 신통기획을 통해 약 5800가구 규모로 공급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단지 내에 압구정~성수를 잇는 공공 보행교를 조성할 것을 요구했으나 조합원들이 반대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초구에선 서초구청이 반포 1·2·4주구, 반포 3주구, 신반포2차 재건축사업 조합에 ‘관내 기부채납하게 될 공원에 화장실과 노숙인 샤워실을 설치해달란 요청이 들어왔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며 논란이 됐다. 이 공문은 민원사항을 알리는 형식으로 강제성이 없다. 조합원들의 반발로 현실 가능성도 적다. 그런데도 지자체가 아파트 단지 내 노숙인 샤워 시설을 조성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올해 11월 입주를 앞둔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공공기여 문제로 강동구청과 반목한 바 있다. 강동구청은 단지 내 조성되는 문화사회복지시설에 ‘지역자활센터’ 확장 이전을 추진했으나 출소자 등이 드나들어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이유로 예비입주자들의 집단 반발이 이어지자 결국 철회했다.
전문가들은 기부채납 문제가 신통기획의 사업성을 저하하는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신통기획이 탄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과도한 기부채납”이라며 “서울시가 합리적인 선에서 기부채납을 요구해야 한다. 무리한 강요를 지속한다면 신통기획을 이탈하는 사업지들이 추가로 나올 수 있고 주택 공급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선종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인허가 패스트트랙이란 편리함만 강조했지 공공기여와 관련된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던 것이 결과적으로 저항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며 “서울시가 주민들과 강대강 국면으로 가기보단 지혜롭게 조율해야 사업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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