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들이 기업대출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간 대기업대출 증가액이 14배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장기화 기업들이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자 주요 은행이 우량한 대기업 위주로 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시중은행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지방은행들은 ‘지방은행 육성 특별법’ 등을 통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대기업대출 규모는 269조3093억원으로 작년 1분기(232조3950억원)보다 36조9143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6대 지방은행(경남·광주·대구·부산·전북·제주)이 대기업에 빌려준 대출금(11조6717억→14조2969억원)은 2조6252억원 증가에 그쳤다. 1년 동안 5대 은행이 지방은행 6곳보다 14배 많은 대출 증가액을 기록한 것이다.
대기업대출에서 밀린 지방은행은 중소기업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5대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36조7240억원으로 대기업대출과 비슷한 규모로 늘었다. 그러나 지방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4조6777억원 늘면서 대기업대출보다 78% 가팔랐다.
지방은행들은 금융당국에 ‘지방은행 육성 특별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자체 금고를 지방은행으로 하도록 법제화하거나 우선권을 부여하고, 지역 이전 공공기관 거래 은행 지정 시 지역은행에 우선권을 주고 자금 예치 비율을 정하자는 것이다. 예금보험료를 이원화·인하하는 등의 조치도 특별법에 포함돼야 한다는 게 지방은행의 요청이다.
지방은행은 지난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의 간담회에서도 지자체 금고 운영 우선권 등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말 부산시와 광주시 금고 지정 약정이 종료되는 등 주요 지자체가 금고 선정을 앞두고 있어 지방은행들의 특별법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는 내달 14일까지 시금고 선정을 위한 제안서를 접수하고 광주시도 이르면 다음 달 시금고 선정 관련 절차에 착수할 전망이다. 현재 부산시 금고는 BNK부산은행이, 광주시 금고는 광주은행이 맡고 있지만 은행권 안팎에서는 이번 경쟁에 시중은행이 공격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3일 부산시 금고 지정 설명회에는 5대 은행에 IBK기업은행까지 총출동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지방은행은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은행들에 지자체 금고를 내주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통상 평가 기준에 출연금이 포함되는데 지방은행이 자본력으로 대형 은행을 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지자체 출연금 규모는 1911억7000만원에 달한다. 부산시 금고 선정 참전이 유력한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부산신용보증재단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출연했거나 출연할 계획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기업 여신 경쟁에서 밀린 지방은행들이 지자체 금고도 잃는다면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앞으로 지자체 금고 경쟁에 더해 특별법 제정 논의도 치열하게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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