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회주의자’와의 이별
응우옌푸쫑 베트남공산당 총비서가 지난 7월 19일 80세로 별세했다. 그는 2011년부터 2024년 사망 시까지 공산당 총비서로 있었으며, 레주언(Le Duan) 이후 가장 오랫동안 총비서직을 맡은 지도자였다. 그는 베트남 사회에 큰 영향을 남겼다. 사회주의 이념을 넘어 진정한 지도자의 전범을 보였다. 그가 총비서로 재임하는 기간에 사회주의 체제를 지탱하려고 노력했고,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일소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히 반부패운동을 추진했다. 이제 그는 갔다.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응우옌푸쫑을 보면 그가 ‘진정한 사회주의자’의 면모를 지녔다고 느껴진다. 그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 유지에 엄격했다. 사욕을 채웠다고 알려진 바도 없다. 그는 1998년산 도요타 크라운 자동차를 사망할 때까지 사용해 검소함을 보였다. 2000년 하노이시 공산당위원회 비서로 취임하며 이 개인용 관용차를 쓰기 시작해 끝까지 바꾸지 않았다. 그는 가족들에게도 엄격했던 듯하다. 그의 부인이 최고 권력자의 부인이라고 나선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아들과 딸을 뒀는데, 이들이 이제까지 언론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었다. 그들은 정부 부처에서 일반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그의 엄격함은 주로 사회주의 체제 유지와 반부패운동에서 나타났다. 그는 국가의 발전과 현 상황에서 사회주의의 실현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현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부패를 청산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졌다. 특히 응우옌떤중 총리 재임 시기에 만연했던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를 국가 전체의 발전보다는 집단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비판했다.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일소하고자 했다. ‘불타는 화로’라고 불리며 2016년부터 본격화된 반부패운동은 많은 공산당원 및 관료들을 물러나게 했다. 베트남에서 반부패운동은 그 10년 전부터 선포됐지만 지지부진하다가 응우옌푸쫑이 두 번째 총비서 임기를 시작하며 강력히 추진됐다. 이로써 베트남의 부패인식지수 순위는 작년에 180개 국가 중 83위로 큰 폭으로 상향했다.
균형외교로서 ‘대나무 외교’
베트남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유연한 정책을 펴는 게 응우옌푸쫑의 기본적 생각이었다. 대외관계에서 그의 치적은 이념과 무관하게 ‘대나무 외교’로 잘 알려진 균형외교를 추구한 점이다. 특히 베트남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쳐, 최근 2년간 바이든, 시진핑, 푸틴 등 세계 강국의 지도자들을 하노이로 불러들였다. 그는 통일 이후 미국을 방문한 유일한 베트남공산당 총비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미국으로 초대했으나, 그가 건강 때문에 또는 다른 이유로 두 번째 미국 방문을 실행하지 못했다.
응우옌푸쫑은 한국 및 한국인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한국 기업인과 학자들의 협력하에 조철현 작가가 <베트남 총비서 응우옌푸쫑>을 발간해 그에게 헌정한 것도 이 우호관계의 산물이었다. 이 전기는 세계 유일의 응우옌푸쫑 전기가 됐다.
공안 출신 우위의 권력구도
한편, 응우옌푸쫑 총비서는 반부패운동을 지속하면서 공안 우위의 권력 구도라는 부산물을 남겼다. 2021년 1월 출범한 제13기 정치국 위원은 당초 18명이었으나, 6명이나 중도 퇴임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정치국 위원들이 부패와 관련하여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었다. 제13기 이전까지 정치국 위원이 중도 퇴임하는 일은 드물었고, 퇴임하더라도 그 수는 한두 명에 불과했다. 제13기 정치국 위원 전체의 3분의 1이나 퇴임하며 최근 2년 내 베트남 내에서 정치적 격변이 일었다. 이후 공산당은 2024년 5월 위원 4명을 충원하여 정치국을 16명 위원으로 구성했다. 그 이후 딘띠엔중 하노이시 당 위원회 비서가 중도 퇴임하고 응우옌푸쫑 총비서가 사망하며, 정치국 위원은 현재 14명으로 됐다. 이들은 공안 출신 5명, 군 출신 3명, 당 전임자 및 국회 출신 4명, 학계 출신 1명, 테크노크라트 겸 당 전임자 1명으로 구성됐다. 최고위 인사 4인은 공안 출신 2명, 국회 출신 1명, 군 출신 1명으로 구성됐다. 이를 보면 정치국 전체와 최고위 인사 4인 중 공안 출신이 가장 우위를 보인다. 최고위 4인에 국회의장 1명이 있는데, 그를 당 및 국가기관에서 주로 경력을 쌓아온 인사로 분류하더라도 당 전임자의 쇠퇴는 분명하다. 더불어 테크노크라트가 쇠퇴했음은 분명하다.
베트남이 2026년 초로 예정된 제14차 공산당대회 이전에 정치국 위원을 보충할지는 알 수 없다. 또럼 국가주석은 신임 르엉땀꽝 공안부장관을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시키려는 의사를 갖고 있을 듯하다. 정치국 내 공안 출신이 다수인 현 상황에서 위원들이 이에 대해 합의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지체된 세대 교체
또한, 응우옌푸쫑 총비서는 정치지도자들의 세대 교체를 준비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한 지도자를 선임하려다 보니 그는 65세를 넘긴 지도자를 차기 총비서 후보로 추대하려고도 했다. 2021년 제13차 공산당대회 직전에 쩐꾸옥브엉 당 상임비서를 차기 총비서 후보로 추대하려다가 실패했다. 이는 새로운 세대 정치지도자들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졌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최근 새로운 세대 중 가장 두드러졌던 인물은 보반트엉 전 국가주석이었다. 보반트엉은 1970년생으로 사회주의 혁명가의 자녀 세대인 ‘붉은 씨앗’ 지도자였다. 그는 호찌민공산청년단에서 경력을 쌓았고, 공산당 중앙선전교육위원회 위원장, 당 비서국 상임비서를 거쳐, 2023년 초 응우옌쑤언푹 사임 이후 국가주석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그도 부패에 연루돼 2024년 3월에 퇴임하고 말았다. 브엉딘후에 국회의장도 차기 총비서 후보로 유력했지만 부패에 연루돼 2024년 5월에 퇴임했다. 현재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할 만한 인사는 레민흥 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 쩐시타인 하노이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정도다.
베트남의 발전을 위하여
응우옌푸쫑 총비서는 이제 공과를 뒤로 하고 하노이에 있는 마이직 국가지도자 묘지에 묻혔다. 그의 별세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문을 던진다. 그가 강력히 추진하던 반부패운동은 어찌 될 것인가? ‘대나무 외교’로 불리던 균형외교는 지속될 것인가? 공안 출신 우위의 권력 구도는 베트남의 국가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우호적 환경은 조성될 것인가? 우선 드는 생각은 이렇다. 반부패운동은 한동안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응우옌푸쫑은 본인과 가족들이 부패에 연루되지 않았기에 이를 강력히 추진하는 동력을 가질 수 있었다. 현재로서는 그에 상당한 다른 인사가 최고 권력자로 등장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외교부문에서 베트남 균형외교의 기반은 다져졌으며, 공산당과 정부 내에 이에 대한 컨센서스가 있는 듯하다. 균형외교 대외정책은 지속될 것이다. 응우옌푸쫑이 건강이 악화되면서 후보자를 찾는 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또럼 국가주석이 공산당 총비서 직무를 대행하게 됐다. 공안 우위의 권력 구도가 당장은 지속될 것이지만, 지금부터 2026년 초 제14차 공산당대회까지 권력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정치국 위원과 부총리 가운데 사임하게 될 인사가 또 있다는 소문도 있기에, 향후 정국은 불안정하다. 베트남의 외국인 투자에 대한 정책은 정권의 변화에 따라 급변하진 않겠지만, 베트남이 발전하려면 외국인투자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기업을 진흥시키는 데 진력할 수밖에 없다. 양자가 상호이익을 도모할 타협책을 만들어 이 전환과정을 유연하게 끌어가야 한다. 새로운 최고 지도자들이 빨리 실용주의 모드로 전환하고 박차를 가해야 국가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주요 약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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