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에 주민등록을 두고 살고 있는 내국인 인구는 2019년 2만6563명에서 2021년 2만5235명, 지난해 2만4314명으로 계속 줄고 있다. 올해 3월에는 2만4196명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구례군을 찾은 외지인은 44만9206명에 달했다. 구례군에서 열린 산수유꽃 축제를 보려 전국에서 사람이 몰린 덕분이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25일 이처럼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 전체에 대해 주민등록 인구와 등록 외국인, 체류 인구를 더한 ‘생활인구’를 산정해 발표했다.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 외에도 월 1회 3시간 이상 관광이나 통학, 통근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총 인구와 특성을 파악해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는 맞춤형 정책을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지역 축제에 등록 인구보다 18.4배 많은 ‘체류 인구’가 몰린 구례군이 대표적 사례다.
◇패러글라이딩 명소 단양군, ‘생활인구 늘리기 특위’ 가동
일부 지자체는 생활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인구감소지역 중 충북 단양군, 충남 보령시, 강원 철원군, 전남 영암군, 경북 영천시, 전북 고창군, 경남 거창군 등 7곳을 대상으로 작년 4~6월 생활인구를 처음으로 산정해봤다. 결과는 올해 1월 1일에 발표됐는데, 벌써 전담 조직까지 둔 지자체가 나왔다.
머드축제로 유명한 보령시의 주민등록 인구와 등록 외국인은 10만명이지만 체류인구는 42만8000명으로 조사됐다. 생활인구는 총 52만8000명이다. 보령군은 ‘관광 유형 지역’으로 분류됐다. 다른 지역보다 체류 일수는 짧고 30세 미만 비중은 높았다. 다만 ‘당일치기’가 아닌 숙박을 하고 가는 관광객이 다른 지역보다 많았다.
이에 따라 보령시는 인구정책 방향을 생활인구 유치로 전환했다. 958억원을 투입해 올해 생활인구 100만명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보령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인 보령머드축제는 일과 휴식을 한 번에 잡는 ‘워케이션(workation)’과 결합시켰다. 머드체험관 3층은 워케이션을 온 직장인들을 위한 공유오피스로 꾸렸다. 휴가 중 급한 일이 생기더라도 불편함 없이 처리할 수 있다.
단양군도 보령군처럼 관광 유형 지역이다. 등록 인구는 2만8000명이지만, 생활인구(24만1000명)는 8.6배다. 패러글라이딩과 짚 와이어, 클레이 사격 등 레저스포츠가 인기를 끌고 풍광도 아름다워 외지에서 관광객이 많이 찾았다. 단양군은 지난 2월 ‘생활인구 늘리기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연간 관광객 1000만명 돌파를 목표로 수상·항공레저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남 강진군은 생활인구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체류 인구를 늘려 온 지자체다. 강진군은 농가에서 일주일 살아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덜어내다’라는 뜻이 호남 방언을 이용한 ‘푸소(FUSO, Feeling-Up Stress-Off)’라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농가에 머물면서 외할머니 밥상 같은 식사와 함께 농촌의 따뜻한 정서와 감성적인 힐링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2015년 시작된 푸소에는 8년간 5만7000명이 다녀갔고, 농가는 52억8000만원의 소득을 얻었다.
◇숙박·음식·체험 할인해주고 철도 운임은 ‘반값’
도시 주민이 특정 지역과 유대관계를 맺고 꾸준히 찾아올 수 있도록 ‘디지털 관광 주민증’ 제도도 확산되고 있다.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일종의 명예 주민증으로, 숙박, 음식, 관람, 체험 등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경기 가평군 가평브릿지짚라인 체험 20% 할인, 전북 임실군 치즈테마파크 체험 10% 할인, 충북 영동군 일라이트호텔 30% 할인, 경북 영덕 고래불국민야영장 20% 할인 등의 혜택이 있다. 디지털 관광 주민증 발급자 수는 70만명을 넘었다. 참여 지역은 기존 15곳에서 지난달 34곳으로 늘었다.
도시에서 더 많이 관광을 떠나 인구감소지역 생활인구가 늘어날 수 있도록 철도 요금 할인 혜택도 도입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철도를 이용해 할인된 가격으로 인구감소지역 23개 지자체 관광명소를 방문하면 운임의 50%를 할인받는 상품을 다음달 1일부터 판매한다. 10% 할인된 가격으로 왕복 승차권을 구매한 후 관광지에 방문한 사실을 인증하면 운임 40% 할인권을 제공받는 방식이다.
‘산업을 활성화시킨다’는 전통적인 정책을 쓰는 곳도 있다. 경북 영천시의 올해 6월 기준 등록 인구는 10만300명이지만 체류인구는 24만3900명으로, 생활인구는 34만7500명으로 집계됐다. 체류인구는 인접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근로자들이 대부분이다. 출퇴근 지역은 대도시인 대구가 40.2%로 가장 많다. 영천시에는 11개 산업단지가 있고, 최근 사업체와 종사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편 생활인구는 행정안전부·법무부의 등록 인구자료와 통신 3사 모바일 자료를 결합해 산출했다. 통계청은 올해 2분기부터는 신용카드사가 가진 지역별 카드 사용 정보와 신용정보사의 직장 정보를 활용해 체류 인구 특성을 입체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번 생활인구 분석 결과를 토대로 지자체가 지역에 체류하는 인구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지역 활성화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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