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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포인트 교훈을 잊었습니까?” 정치는 선의가 아닌 결과로 책임 지는 것
공정위 전자거래감시팀 조사관들은 26일 새벽 1시 30분에 티몬 본사에서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 환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공정위 조사관들이 사무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조사관들이 현장 점검에 착수한 건 전날(25일) 오후 2시 30분인데 11시간이 지나서야 건물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공정위 측에서 이른바 ‘감금 사태’가 심각해지자 티몬에 환불 접수를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고, 티몬이 현장에서 환불 접수를 시작하고 나서야 감금 사태가 일단락 될 수 있었습니다. 공정위 현장점검으로 촉발된 감금 사태가 예기치 않게 환불 접수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불 접수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티몬은 하루 지나서 27일 낮 12시 45분쯤 본사를 폐쇄했고 자금 지급 승인 차단 등을 이유로 환불 절차도 잠정 중단했습니다. 현재까지 티몬 환불 신청 접수 2600여명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260명에 대해서만 10억 가량 환불 조치가 이루어졌고, 나머지 대다수 인원인 90%에 대해서는 환불 절차가 중단됐습니다. 위메프도 현장에 초기에 찾아온 피해자 일부에게만 이루어졌고 대다수는 돈을 받지 못했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환불 재개 여부도 불투명하고 환불이 모든 피해자들에게 전부 다 이루어질지도 불투명합니다. 권도안 티몬 운영사업본부장은 27일 “여유로운 상황은 못 되고 환불 자금을 확보했지만 워낙 적은 금액”이라면서 추가 환불 지급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아직까지 환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좌불안석입니다.
결국 공정위 조사관들의 현장 점검과 소비자 피해 구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공정위는 티몬과 위메프의 환불 지연과 관련해 전자상거래법을 적용해 업체에 대해 제재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습니다. 전자상거래법 제18조에 따르면 청약철회를 한 경우 통신판매업자는 재화 등을 공급받은 날로부터 3영업일 이내에 돈을 돌려줘야 하고 지연될 경우 지연배상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이를 근거로 공정위는 티몬과 위메프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 시정 명령, 검찰 고발 등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실효성입니다.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해당 업체에 과징금이나 시정명령을 내리더라도 티몬과 위메프가 돈이 없다고 버티기에 들어가면 피해자들에게 환불 조치를 강제할 수 없습니다. 행정당국의 과징금 부과 등은 정상적으로 자본금이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해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고 대규모 정산 지연과 환불 지연이 벌어지고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티몬·위메프를 상대로는 실효성 있는 구제가 어렵습니다. 설령 공정위가 티몬·위메프에 현장점검을 100번 나가고 시정명령이나 검찰 고발 등 가능한 모든 행정조치를 내린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의 계좌로 환불금이 입금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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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기대볼 수 있는 건 집단분쟁조정 절차입니다. 하지만 소비자원 조정 결정은 강제력이 없고 권고에 불과합니다. 조정 결정은 양 당사자가 수락을 해야 법적인 효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가 터졌을 때도 소비자원이 집단분쟁 조정 절차에 들어갔지만 업체 측이 조정에 불응해서 결국 소송으로 갔습니다. 소송 끝에 피해자가 승소했지만 이미 시간은 2년이 흐른 뒤였고 아직도 환불을 받지 못했습니다. 초창기에 머지포인트 사태때도 현장에 찾아간 일부 소비자들만 환불을 받았을 뿐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환불을 받지 못한 겁니다. “초기에 현장에서 환불을 받지 못하면 돈을 잃는다”는 정보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정위의 현장 점검 및 제재, 집단분쟁조정 개시, 집단 소송 등을 하더라도 피해 구제에 있어서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것이 지난번 머지포인트 사태로 소비자들이 이미 학습을 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머지포인트 교훈을 이미 잊은 듯합니다.
업체 측이 잘못했지만 피해는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티몬과 위메프가 하루빨리 환불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업체의 선의에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게 현행 법률과 제도의 뚜렷한 한계입니다. 이번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는 티몬과 위메프가 정산 대금을 다른 곳으로 돌려 쓰면서 현금 유동성이 터지면서 발생했습니다. 티몬과 위메프는 대규모 유통업법 적용을 받지 않는 업체라 규제의 사각지대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대규모 유통업법을 적용받지 않은 업체들은 정산, 대금, 보관 등에 관한 법 규정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소규모 업체라도 정산 미지급 사태를 제재할 법적 근거를 하루빨리 마련하는 게 시급해 보입니다. 거기에다 두 달이 넘는 너무나도 긴 정산 주기에 대해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손을 봐야 할 겁니다.
장기적으로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공정성을 담보하고 소비자 피해 방지 등을 보완할 수 있는 온라인플랫폼법에 대한 제정도 검토해봐야 합니다. 공정위도 플랫폼법과 관련해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이유로 이래저래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원론적 입장 표명만이 아니라 법령 정비와 개정 등을 공정위가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필요성은 이번 사태를 통해 더 커졌습니다.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해 동분서주 노력하는 공정위의 선의가 실효성 있는 조치로 담보되기 위해서는 법령 정비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해 보입니다. 정치는 선의가 아닌 결과로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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