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제11사단 제5중대 함평양민 남산뫼 제노사이드
6·25한국전쟁 9·15인천상륙작전 9·28서울수복 후
11월 초부터 함평군 해보면 금덕리 문장 오일장 장터에
중대 본부를 둔
제11사단 제20연대 제2대대 제5중대 소속 국군
하사 김영광 경북 의성군 춘산면 금오동 477번지
일병 김추길 경북 경주군 서면 도리 531번지
두 명의 병사가
1950년 12월 2일 장성에 주둔한 제3대대와 연락하는 작전에서
함평군 월야면 계림리 지하보 옆에서 공비와 전투 중 전사했다
하루 지나 훼손된 시신을 수습하여
12월 4일 해보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화장한 뒤 장례식을 치르며
“너희들을 그냥 보내지 않고 함께 보내겠다”고
두 눈이 뒤집힌 제5중대장 권준옥의
“하루에 공비 300명씩 사살하고 건물 50채씩 소각하는 전과를 올리라”는 지시로
젓가락 사단이라 부르는 제11사단 제5중대는
12월 6일부터 다음 해 1월 14일 중대장이 바뀔 때까지
3개월여 동안 중대장 꼴리는 대로 골라
함평군 동삼면이라 부르는 월야면 해보면 나산면
열다섯 자연마을 비무장 민간인 524명을
소총과 기관총으로 갈기면서 제노사이드 하였다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가리지 않고서 희생된 주민 모두
불갑산 일대의 공비들 견벽청야 적 소탕 실적으로
농가의 호미 낫 쇠스랑 작대기 등 농기구가
전투 중 노획물로 둔갑해 보고됐다
월야면은 진주정씨가 면민의 40%를 차지했다
1950년 12월 7일 아침 일찍 제5중대 군인들이
정절과 의를 숭상하는 양반촌으로 불리는
지변마을 동래정씨 나머지 여섯마을 진주정씨 집성촌인
월야리 순촌 송계 괴정 동산 월악리 지변 내동 성주 등
일곱 마을 사람들을 안 나오면 죽인다고 협박하여
정유재란 당시 순절한 8열부 정각 앞 살얼음 언 논바닥에
1,000여 명을 집결시킨 뒤
앞산인 남산뫼로 강제로 끌고 가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고서 무차별 사격하고
“이번에는 꼭 살려준다 외치고”서
일어서면 확인 사살 쏘기를 삼세 번 반복했다
아직도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지만
죄 없는 민간인 250여 명의 목숨이 끊어졌다.
그중에는 방위군 소위도 있었고
경찰 가족으로 8개월 임산부도 있었으며
마을 이장도 있었으나
공비들 협조자가 있는지 묻지도 않고 집단 확인 학살했다
국방부 정훈국 소속 선무공작대원 윤인식 씨가 항의하여
열외 되어 목숨을 건지는 대신에
15세 미만의 아이들은 성냥으로 불을 켜고
45세 이상의 노인들은 불을 옮겨
가옥 1,000여 채 불을 질러 삶의 터전을 싹 쓸어 버렸다
제5중대장 권준옥이 현장을 지키며 지휘했다
학살에 동참한 제5중대 군인 중 생존자로 연락병 김일호 등 7명은
제주도와 서울에 살고 있다
몇 번의 설득으로 용기를 내 증언하였다
집단학살 이유는 ‘전날 밤 봉홧불을 피우고 만세를 불렀다’는
터무니없는 변명이다
5중대가 부녀자를 강간하고 재산을 약탈하며
제노사이드 당한 뒤 함평군 동삼면 일원에서는
떼를 쓰고 우는 아이는 ‘5중대 온다’는 말만으로 울음을 그친다
어른들은 그 죽일 놈들 분노의 탄식이 저절로 쏟아진다
(사)함평사건희생자유족회에서 가해부대 국군 2명의 전사비를
전사한 현장에 세워서 명복을 기리고자
2004년 6월 전사 54주기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세우고 관리하며
피해자 유족들은 먼저 손을 내밀었으나
국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는다
남산뫼 학살 현장은 군인들이 총을 쏜 곳은 밭으로 개간되어
봄이면 매화꽃이 피고 진다
주검이 쌓인 낮은 구덩이는 양계장이었다
지금은 농산물 창고로 쓰고 있다
사계절 바람은 소리 높이 구름은 머뭇대며 남산뫼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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