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는 일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라피더스가 일본 정부의 대출 보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라피더스는 2027년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시설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유치된 자금으로는 설비를 마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자금 조달에 성공해도 부족한 양산 경험과 인력 문제 등 반도체 산업 저변이 열악해 고객 확보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전날 훗카이도에 위치한 라피더스 생산 기지 건설 현장을 방문해 국회에 자금 조달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차세대 반도체의 대량 생산에 필요한 법안을 신속히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라피더스는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도요타와 소니, 소프트뱅크, 키옥시아, NTT, NEC, 덴소, 미쓰비시 UFJ은행 등 일본 8개 기업이 자금을 출자해 설립한 기업이다. 일본은 한때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의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반도체 선진국이었지만, 한국과 대만 등에 자리를 내줬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일본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2001년 27.7%에서 2022년 8.6%로 추락했다.
라피더스는 현재 2027년 최첨단 2㎚ 반도체를 대량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체 기술이 없는 라피더스는 미국 IBM과 2㎚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파일럿 생산 라인은 내년 4월 가동될 예정이다. 2㎚ 반도체 양산을 앞두고 있는 TSMC와 삼성전자, 인텔 등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과 첨단 공정 경쟁을 벌일 계획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유치한 투자액으로는 양산 시설을 갖추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외신에 따르면 양산 시설을 짓기 위해 5조엔(약 45조원) 수준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라피더스는 도요타와 소니그룹을 포함한 8개 기업으로부터 73억엔(약 662억원)의 투자를 받았지만, 양산 시설 건설과 장비를 도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민간 기업 외에 라피더스에 선뜻 자금을 지원할 금융기관도 없는 상황이다. 신생 기업으로 매출 실적이 없어 일본 금융권에서도 라피더스에 자금을 대출해 주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에서 국가가 보증을 하는 방식으로 라피더스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하반기 임시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라피더스가 일본 정부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도 TSMC와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재 일본 반도체 생태계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을 비롯한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 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돼 파운드리 분야 양산 경험이 전무할뿐더러 인재와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파운드리 경쟁력의 핵심은 양산 노하우지만, 일본은 현재 소부장과 낸드플래시 기업 외에 파운드리와 관련한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력과 전문성을 보유한 인재가 거의 없다”면서 “고객사를 유치하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돼, 자금 조달에 성공해도 사업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따른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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