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사람을 토막 냈다는 증거 있냐? 내게 10일만 주면 범인을 데려오겠다”
용인 토막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재판을 받던 중국 국적의 남성 유동수(49)는 자신에게 죄를 묻는 재판부를 향해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고함을 쳤다. 유동수는 정말 억울한 누명을 쓴 걸까?
◇연인에게 “우리 헤어지자” 메시지 후 실종된 40대 여성
이른 무더위가 시작된 2020년, 7월 25일 용인시 처인구에서 전날까지 식당 일을 나오던 여성 A (41) 씨가 갑자기 사라졌다.
이튿날 함께 가게에서 근무하던 동료는 A 씨가 출근하지 않자 이를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A 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금융기록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A 씨가 연인관계였던 B 씨에게 “우리 이제 헤어지자”라는 메시지를 남긴 이후 더 이상의 생존 신호(돈을 쓴 흔적이나 카드, 휴대전화 등 사용 명세)가 포착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A 씨는 당일 직전까지 B 씨와 아무런 문제 없이 일상적인 통화를 주고받은 상태였다.
의심스러운 정황을 확인한 경찰은 A 씨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각종 정황 등을 판단해 유력한 용의자로 전 연인관계였던 유동수를 수사선상에 올렸다.
◇전 내연남 유력 용의자로 긴급 체포…혈흔·DNA 등 확보
경찰이 갑작스럽게 유동수를 용의자로 지목한 이유는 CCTV에서 포착된 다수의 장면 때문이었다. A 씨는 실종 당일 오후 9시 51분쯤 유동수의 원룸에 들어갔지만, 이후 건물에서 다시 나온 흔적이 없었다.
수사 결과 유동수는 같은 날 퇴근 후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혼자 나와 자기 집으로 갔다. 유동수는 A 씨가 용인시 처인구의 원룸에 도착하기 전 집 안으로 들어가 A 씨와의 마지막 만남을 준비했다.
또 CCTV에는 유동수가 이튿날인 26일 오전 4시쯤부터 8시까지 계속해서 몇 개의 가방을 들고 나가 다시 들어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또 무언가로 인해 오염된 이불을 꺼내 버리는 모습과 큰 마대 등을 옮긴 정황 등 여러 가지 수상한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끝내 A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27일 유동수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체포된 유동수는 “CCTV 속 그 여자는 A 씨가 아니다. 난 그 사람이 A 씨라는 것을 잘 모르겠다”라는 논리를 펼쳤다. 당시 유동수가 가방 등을 폐기하던 곳과 집까지 거리는 수 ㎞가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는 “그 가방 안에 있던 것들은 음식물 쓰레기였다”는 주장을 했다. 특히 경찰이 유동수의 이동 동선에서 실종된 A 씨가 신고 있던 샌들도 발견했지만, 그는 끝까지 “나는 A 씨를 만난 적이 없다”라며 자신의 범죄를 부인했다.
결정적으로 유동수의 집 현관, 베란다, 화장실, 배수구, 문턱, 벽 등에선 A 씨의 혈흔과 DNA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유동수는 “범행 도구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피만 가지고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사람 혈액이 그냥 떨어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고나 자살 혹은 제삼자가 죽였을 수도 있다”라는 입장을 보이며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범행 후 생존 위장, 피해자 휴대전화로 지인들에게 메시지
끝까지 버티는 유동수의 자백을 받기 위해 경찰은 추가 조사를 시작했고, 26일 새벽 유동수가 범행 후 A 씨가 살아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A 씨 휴대전화로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정황이 포착됐다.
‘친구를 간병하러 대전에 내려왔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A 씨의 직장동료와 외삼촌에게 보낸 후 사귀던 남자 친구 B 씨에게는 ‘끝내자, 연락하지 말라’ 등의 내용의 메시지를 비슷한 시간대에 보냈다.
직장동료와 외삼촌은 해당 메시지에 대해 “평소와 너무나 다른 말투였다”고 경찰에 진술했고, B 씨와는 사건 발생 직전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일상적인 통화를 주고받은 상태였다.
모든 증거가 유 씨를 가리키자, 경찰은 프로파일러까지 투입해 자세한 범행 동기와 경위 사건 경위 등을 토대로 유동수의 진술을 받아낼 방침을 세웠다.
◇나흘 뒤 훼손된 피해자 시신 발견…끝까지 혐의 부인
29일 오후 8시 수색을 통해 유동수 자택에서 2㎞가량 떨어진 처인구 남동 경안천 인근 땅속에서 비닐에 담긴 채 훼손되 있는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훼손된 시신의 지문을 조회한 결과 A 씨의 시신 일부임이 확인됐고, 31일까지 수색을 벌인 끝에 A 씨의 시신을 모두 찾아냈다.
훼손된 시신이 모두 발견된 곳은 첫 번째 발견 지점에서 약 1km 안팎이었다. 시신은 심하게 훼손돼 육안으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수색견에 의해 찾을 수 있었다.
시신이 모두 발견됐음에도 유동수는 끝까지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한결같이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그의 자택에서 살인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개의 공구가 발견됐지만, 그는 조경 작업에 필요해 가져다 둔 것이라는 핑계와 함께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를 토대로 법원은 자백이 없더라도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고 법에서 규정하는 신상 공개 요건에 부합한다고 판단, 2020년 8월 4일 중국인 유동수의 얼굴과 이름,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5일 용인동부경찰서 앞에서 모든 신상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날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이날 오전 유동수를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 등 혐의로 수원지검에 송치했고 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호송되는 과정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10년간 비밀연애 후 이별…다른 남성 만나려 하자 범행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수사 결과 유동수는 약 10여년 전 재외동포 비자(F4)로 한국에 와 일용직 등으로 생활해 오다 피해자인 A 씨를 알게 됐고, 두 사람 모두 중국에 가정이 있었지만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하지만 10년간 비밀연애를 하던 둘은 헤어졌고, A 씨가 다른 남자와 교제를 시작하자 분노에 휩싸여 자기 집으로 유인한 후 둔기로 머리 부위를 가격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시신을 토막 내 용인 경안천 주변 곳곳에 각각 유기했다.
◇4차 공판서 “진범에게 범행 자백 쪽지 받았다” 억지 주장
1시 재판부는 계속해서 범행을 부인한 유동수에게 “이 사건에서 직접 증거는 없지만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에 의해 충분히 살인죄가 인정된다”며 “그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이후 형이 가볍다는 취지로 검찰이 제출한 항소심에서 유동수는 “사람을 토막 냈다는 증거가 있냐? 내게 10일만 주면 범인을 데려오겠다”며 “난 이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경찰이 살인 누명을 씌웠다”는 일관된 주장을 펼쳤다.
특히 가장 큰 문제가 됐던 4차 공판에서 유동수는 구치소에서 법정으로 출정하던 중 “상의 주머니에 자신도 모르는 쪽지가 넣어져 있었다”며 재판 과정에서 쪽지를 공개했다. 하지만 “누가, 언제 넣었는지는 모른다”는 이해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당시 그가 공개한 쪽지에는 “유동수에게 미안하다. 나 살기 위해서 꾸민 일이다. 당신이 체포된 것을 봤다. 이 편지를 보면 나는 한국 뜰 것이다. 칼, 도끼, 김장 봉투를 정자 밑에 뒀다”고 쓰인 내용이 담겨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메모지는 구치소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작성자가 한국을 뜬다고 하면서 구치소에서만 사용되는 메모지가 어떻게 피고인 상의 주머니에 있느냐”고 지적하자 유동수는 또 “모른다”고 일관된 ‘모르쇠 주장’을 펼쳤다.
결국 재판부는 이를 유동수가 급조한 ‘가짜 증거’라고 판단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서 “재판부 기만” “영구 격리 필요” 무기징역 확정
오랜 기간 내연관계였던 A 씨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했음에도 범행을 내내 부인하던 유동수에게 2021년 7월 16일 재판부는 “영구 격리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10월14일 대법원은 재범의 가능성과 함께 허위로 작성된 메모지로 법원을 기만했다는 죄목을 추가, 상고를 기각하고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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