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을 하다 숨진 쿠팡 노동자들의 유족이 ‘4시간 골프를 쳐도 1만5000보는 걷는다’는 발언 등으로 과로사를 부인한 쿠팡에 대해 사과를 촉구했다.
택배 배송기사였던 고(故) 장덕준 씨의 유족은 24일 서울 영등포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밥을 먹지 않고 다이어트를 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아들을 굶겨 죽인 부모로 만들더니, 덕준이가 한 일을 골프에 비유하며 죽은 아들을 모욕하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하는 쿠팡에 치가 떨린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장 씨의 어머니 박미숙 씨는 “산재 승인이 나면 당연히 회사가 사과할 거라 믿었던 게 어리석은 착각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면서 “덕준이가 살아 생전 ‘우리는 쿠팡을 이길 수 없어요’라고 외치던 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라고 했다.
장 씨는 지난 2020년 10월 쿠팡 물류센터에서의 새벽 근무 뒤 욕조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2021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판정을 받은 유족들은 쿠팡풀필트먼트서비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쿠팡은 장 씨의 사망을 두고 ‘다이어트가 사망의 원인’, ‘골프를 쳐도 1만5000보 정도는 걷는다’고 하며 장 씨의 업무가 높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 씨의 유족들은 “쿠팡은 유족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故) 정슬기 씨의 아버지 정금석 씨도 같은 회견에서 “첫째 손녀는 ‘아버지가 로켓연료가 됐다’고 말하고, 둘째 손녀는 ‘이제 우리 집은 돈이 없으니 아껴야 된다’라며 저녁마다 전기코드를 빼고 있다. 세 살 막내는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 엄청난 아픔을 바라보는 할애비는 하루하루의 삶이 고통이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하청 노동자인 정 씨는 원청인 쿠팡CLS의 직접적인 업무 지시로 주 63시간, 야간노동 할증 시 주 77시간이라는 초장시간 노동을 해왔다. 그는 “부탁드립니다. 달려주십시오”라는 쿠팡CLS 직원의 메시지에 “개처럼 뛰고 있긴 하다”라고 답했으며, 하루 이동거리만 100킬로미터(km)가 넘을 정도로 과로를 반복하다 지난 5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정 씨의 아버지는 “쿠팡은 카톡을 통해 (정 씨의) 출퇴근 시간을 체크했고,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통해 직접 통제하고 조종했다”라며 “그러나 쿠팡은 지금까지도 대리점 뒤에 숨어 우리 일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으니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며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쿠팡이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악한 기업에서 세상을 유익하고 아름답게 하는 좋은 기업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며, “힘없는 노동자들이 사용자들의 횡포와 약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장 씨와 정 씨 유족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회의장실을 방문해 국회가 사건 해결에 나서줄 것을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요청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오전 노동조합 가입 직원, 언론인 등을 비롯해 1만 6450명의 취업 거부사유를 기재한 이른바 ‘쿠팡 블랙리스트’의 제보자 김준호씨의 주거지를 찾아 노트북,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다. 앞서 70여개 시민단체가 김 씨를 비롯한 제보자들의 ‘공익신고자 보호’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신청했으나 해당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경찰이 제보자들을 압수수색한 근거는 쿠팡의 고소에 있다. 쿠팡은 지난 2월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회사의 당연한 책무”라며 제보자들을 고소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지난달 12일 제보자 A씨를 영업비밀 누설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압수수색했으며, 김 씨에게도 같은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권영국 대표는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정작 강제수사를 해야할 피의자인 쿠팡측에 대해서는 임의수사로 일관하고, 공익제보자에 대해 강제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경찰의 수사는 그 자체로 가해자를 비호하는 행위”라며 “연이은 압수수색은 공익제보자 지위에 있는 이들을 위축시키려는 의도 외에는 달리 설명되지 않는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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