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하고 유머가 가득했던
사람을 사랑한 야구 선수
야구 선수 출신 이병훈은 과거 LG 트윈스,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를 거치며 외야수로 뛰었지만 그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술을 너무 좋아해 술 때문에 벌어진 사고로 은퇴했지만, 선수를 그만둔 이후에도 특유의 재치로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는 2015년 이후로 해설 위원 역시 그만두며 얼굴을 보기 힘들었는데, 최근 심근경색으로 인해 57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짧았던 선수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의 따뜻한 면을 기억하는 선후배 동료들이 많은 애도를 보냈다는데. 그들이 기억하는 이병훈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가 술을 끊은 이유
이병훈은 술을 아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시작은 대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아주 유서가 깊다.
고려대에 다녔던 그는 연세대의 운동부와 함께 회식을 했는데, 이때 연대생 한 명이 소주 한 병을 전부 들이켰다고 한다.
이를 본 고대생이 지지 않으려고 소주 두 병을 단번에 마셨고, 이에 다른 연대생 역시 소주 세 병으로 응수했다고. 그러자 이병훈은 소주 네 병을 원샷하며 모두를 압도했다.
이후 고려대에서 보여준 뛰어난 실력으로 1990년 LG 트윈스에 김동수를 이어 1차 지명 2순위로 입단했으며 그 해 LG 트윈스가 승리를 하는데 큰 활약을 했다.
하지만 술을 너무 좋아해 결국 음주운전 후유증으로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고, 김응용 감독은 “타자로 많이 성공할 수 있는 선수였는데 술이 이병철을 다 망쳐 놓았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이후 무려 10년 동안이나 술을 끊었는데, 두 아들들과의 약속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병철은 “큰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술에 취한 채 집에 왔는데 아들이 혼자 울고 있었다. 그때 큰아들도 야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구를 그만둔다는 이야기일 줄 알았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들이 한 이야기는 전혀 달랐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인 이병철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처럼 멋진 야구 선수가 되라고 응원해 줬다고.
하지만 그 수많은 격려에는 놀랍게도 항상 똑같은 꼬리표가 따라붙었는데, “너는 아빠처럼 술 마시지 마라”라는 말이었다고. 이에 충격받은 이병철은 술을 끊었으며 심지어 그날의 날짜까지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심지어 연말에는 도저히 술 마시자는 연락들을 뿌리칠 수 없어서 핸드폰을 집에 두고 혼자서 절에 들어가 지내기도 했다고. 그의 금주는 작은아들이 프로에 입단할 때까지 이어졌다.
술만큼 뜨거웠던 심장
이병철은 이토록 술을 좋아했지만 사람 역시 좋아해 후배들을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기합조차 준 적이 없다고 한다. 당시 체육계는 구타가 아주 빈번했는데, 후배들이 맞을 일이 생기면 자신이 대신 맞기도 했다고.
그가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했을 때, 당시 그곳은 험악한 체육계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곳이라 때리거나 맞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둘 다 고르기 싫었던 그는 뒤집어 엎어 해결했다고 한다.
또한 야구 은퇴 이후의 일화도 있는데, 당시 그는 둘째 아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야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너무 열중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새벽 1시가 가까워졌는데 어디선가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당시 여성은 성추행을 당한 상태였으며, 이병철이 50대가 가까워진 나이로 20대의 남성과 추격전과 격투를 벌여 결국 범인을 잡았다. 이 일로 그는 용감한 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이병훈은 2024년 57세라는 젊은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믿기지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입담이 아직도 생생한데”, “좋은 사람이었는데 너무 안타까워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댓글1
ㅠㅠㅠ왜 자꾸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빨리 가실까요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