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쉽게 쓴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된다는 보장은 없고, 길고 난해하게 쓴다고 해서 나쁜 글이 된다는 법도 없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마지막장은 난해하기 그지없고 길게 늘어 쓰기까지 했는데도 영문학의 최고봉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졌다. 반면에 내가 쓴 생활일기는 짧고 간결하게 쓰여서 읽기는 편할지 모르나,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엉성하고 빈약한 내용을 자랑한다.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끊어쓰기가 좋은 이유는 독자의 확증편향에 가까운 개인적 관점과 견해를 조금은 낮추어줄 수 있다는 특징 덕분이다. 위대한 소설작품을 쓰는 일이나 학회에 제출할 논문을 쓰는 경우가 아닌 바에야 끊어쓰기는 글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경주읍에서 성 밖으로 십여 리 나가서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여민촌 혹은 잡성촌이라 불리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 한구석에 모화라는 무당이 살고 있었다. 모화서 들어온 사람이라 하여 모화라 부르는 것이었다. <무녀도> 中, 김동리
김동리 소설 <무녀도> 중 일부이다. 모화라는 무당을 소개하는 장면으로, 짧은 4문장으로 정리했다. 군더더기 없이 짧은 문장 속에 가난하고, 어쩌면 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인의 삶을 담고 있다. 반면에 두렵고 복잡한 감정의 흐름을 끊지 않고 이어서 쓰면서, 극도로 긴장된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 명랑한 찬송가 소리와, 풍금 소리와, 성경 읽는 소리와, 모여 앉아 기도를 올리고 빛난 음식을 향해 즐겁게 웃음 웃는 얼굴들 대신에 군데군데 헐려가는 쓸쓸한 돌담과 기와 버섯에 퍼렇게 뻗어오른 묵은 기와집과, 엉킨 잡초 속에 꾸물거리는 개구리 지렁이들과, 그 속에서 무당 귀신과 귀머거리 귀신이 각각 들린 어미 딸 두 여인을 보았을 때 그는 흡사 자기 자신이 무서운 도깨비굴에 홀려든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새삼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무녀도> 中, 김동리
부호화 특수성 원리encoding specificity principle와 같은 이론을 글쓰기에 대입시킬 필요는 없으나, 어떤 식으로든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취미든 직업이든 관계없이)에게는 괜찮은 이론일 수도 있다. 쉽고 간결한 문장은 이해하기도 쉽고 써먹기도 쉽다. 물론 차이는 있다. 소설가라면 ‘잠을 잤다’라는 표현과 ‘침대에 누워 하루동안 필연적으로 마주쳐야 했던 불필요한 대화들과 불쾌한 경험들을 기억의 저편 너머로 훌훌 던져버리고 빠른 속도로 꿈의 나라를 향해 항해하기 시작했다’라는 표현을 두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다만 시적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 뜻은 동일하다는 점은 잊지 말자. 쉬운 글은 기억하기도 쉽고, 써먹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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