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예원 신은빈 기자 = “뚜껑을 열기 전엔 뭘 샀는지 모르잖아요. 그 맛에 하는 거죠.”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캡슐 장난감 뽑기(가챠) 전문점. 평일 오후 2시라는 한산한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기계 내부를 들여다보고 손잡이를 돌리며 즐거워하는 이들로 북적거렸다. 이곳에는 100여 개의 가챠 기계가 비치돼 있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정 모 씨는 작고 아기자기한 모형과 인형을 모으는 게 취미다. 정 씨는 2년 전 일본 여행에서 가챠숍을 알게 된 후 최근 국내에도 관련 기계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종종 가게를 방문한다고 했다.
정 씨는 “모형들이 귀엽기도 하고, 예전에 보이던 ‘뽑기’처럼 가챠도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재미가 인기 요인인 것 같다”며 “헬로키티를 좋아해서 멜론 소다 위에 앉은 캐릭터 열쇠고리를 하나 뽑았다”고 웃어 보였다.
과거 80~90년대 동네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캡슐 뽑기’가 오늘날 ‘가챠’라는 이름으로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가챠는 뽑기 기기에 동전을 놓고 레버를 돌릴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한 일본 의성어에서 유래됐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 등 다양한 취향을 겨냥한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 번 뽑는데 몇천원 선이어서 부담이 크지 않고 당첨 등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게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가챠 가게를 찾은 시민들은 캡슐 뽑기를 즐기는 가장 큰 이유로 ‘불확실함에서 오는 재미’를 꼽았다. 서울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 모 양(19)은 “무작위로 산 캡슐에 내가 좋아하는 제품이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냐”며 “당첨되면 행운이 따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구 동구에서 올라온 직장인 정 모 씨(25)는 “유튜브 등 SNS 알고리즘에 많이 떠서 오늘 처음 와 봤다”며 “뭐가 나올지 모르니 게임을 하는 것처럼 쫄깃한 긴장감이 있다. 벌써 3만원이나 썼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일부 가게에선 돈을 넣고 손잡이를 돌려야 캡슐이 나오는 기기 대신 불투명한 캡슐이나 종이상자를 가져다 놓고 판매하기도 했다.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은 바구니를 들고 제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어떤 제품을 고를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송 모 양(19)은 “주변 친구들이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며 “기계로 캡슐을 뽑든 그냥 캡슐을 뽑든 뚜껑을 열기 전까지 모르는 건 같지만 기계는 카드가 안 돼 이 가게로 종종 온다”고 했다.
경기 시흥시에 거주하는 대학생 오 모 씨(20)는 “잡화, 생필품을 작게 미니어처로 만든 소품을 좋아해 지난해부터 가끔 들른다”며 “원하는 제품을 고르기보단 내가 몰랐던 제품을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오늘은 아까 봤던 의자 모양 열쇠고리가 귀여워 뽑을까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인기는 점주들도 체감하는 모습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가챠숍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보통 10~20대 여성이 가게를 많이 찾고, 주말엔 400명 넘는 손님이 방문하기도 한다”며 “초창기엔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만 인기가 많았는데, 최근엔 매달 200~300가지의 뽑기 인형이 발매되는 등 종류도 다양하다”고 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지난 2월엔 캡슐 장난감 전문점의 원조 중 하나인 일본 캐릭터 기업 반다이남코의 한국 법인이 ‘가샤폰’을 국내 최초로 열었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에 문을 연 가샤폰은 일부 인기 캐릭터의 경우 금세 동날 정도로 재고 소진이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캡슐 장난감 시리즈 전 종류를 ‘언박싱'(unboxing·상자를 열어 상품 개봉 과정을 보여주거나 이를 촬영한 영상)하거나 자신이 뽑은 장난감을 투명 주머니 등에 넣어 꾸미는 ‘가챠 파우치’도 유튜브 등 SNS에서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일각에선 주 고객층이 청소년들이어서 기존 ‘인형 뽑기’ 등에서 발생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고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서로의 소유물을 공유하고 드러내는 ‘언박싱’ 콘텐츠에 많이 노출된 젊은 세대들이 확률형 아이템의 불확실성에 재미를 느낀 것”이라며 “낮은 가격 등 높은 접근성과 몇백 종에 이르는 소품 종류가 젊은 세대의 취향 소비 수요와도 맞지만 과소비는 자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