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이하여신 1년 새 1조 넘게 불어
2002년 이후 20여년 만에 최대 규모
고금리 부담에 부동산 PF까지 겹악재
국내 캐피탈사들이 떠안고 있는 부실채권이 한 해 동안에만 1조원 넘게 불어나면서 5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만명의 신용불량자를 낳으며 우리 경제에 상처를 남겼던 이른바 신용 대란 이후 20여년 만에 최대다.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고금리 터널 속에서 연체가 계속 쌓이는 와중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악재까지 겹치면서, 제2금융권을 둘러싼 우려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할부금융사와 리스사, 신기술금융사 등 캐피탈사에서 발생한 고정이하여신은 총 4조849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2%(1조2879억원) 늘었다.
고정이하여신은 금융사가 내준 여신에서 통상 석 달 넘게 연체된 여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금융사들은 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나누는데 이중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묶어 고정이하여신이라 부른다.
캐피탈사별로 보면 현대캐피탈의 고정이하여신이 761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2.4% 줄었지만 여전히 최대를 기록했다. 메리츠캐피탈은 4512억원으로, KB캐피탈은 4346억원으로 각각 276.4%와 2.6%씩 늘며 해당 금액이 많은 편이었다.
이밖에 ▲우리금융캐피탈(2919억원) ▲롯데캐피탈(2484억원) ▲하나캐피탈(2008억원) ▲OK캐피탈(1996억원)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1943억원) ▲JB우리캐피탈(1883억원) ▲BNK캐피탈(1677억원) 등이 고정이하여신 상위 10개 캐피탈사에 이름을 올렸다.
캐피탈업계의 이같은 부실채권 규모는 분기 기준으로 2002년 9월 말(6조6158억원) 이후 제일 큰 것이다. 당시는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300만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가 나왔던 신용 대란의 최전선에 있었던 시기다. 이때까지만 해도 캐피탈사들 역시 대출전용카드를 대거 발급해 왔던 탓에 카드업계로부터 시작된 후폭풍을 피할 수 없었다.
몸집을 불리는 부실채권의 배경에는 장기화하고 있는 고금리 여파가 자리하고 있다. 높은 금리가 지속되며 이자 부담이 쌓이자, 빚을 갚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다.
아울러 부동산 PF 대출도 위험의 진앙으로 꼽힌다. 부동산 PF는 건물을 지을 때 시행사가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 이용하는 금융 기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태 직후 저금리 시기에 캐피칼사들도 각종 부동산 PF 사업에서 주요 자금 공급 역할을 맡아 왔다.
결국 금융당국이 칼을 빼들었다. 부동산 PF 연착륙을 위해 부실 사업장에 대한 정리 작업에 착수하며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사업장 중 5~10%는 실제 부실 우려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관련 사업장 전체 규모가 230조원에 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위험이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이 새롭게 마련한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기준을 본격 적용하면 부실 우려 등급 사업장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개선안의 최초 평가 대상 사업장 규모는 전국의 약 30% 수준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2금융권 중에서도 리스크가 큰 여신을 많이 취급하는 캐피탈업계인 만큼, 고금리에 따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PF 구조조정 과정에서 추가 부실이 얼마나 될 지에 따라 캐피탈사들이 받을 충격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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