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11시,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한 대형 쇼핑몰 지하 식당가. 중국에 600개 넘는 매장을 보유한 최대 국수 프랜차이즈인 ‘허푸라오몐(和府捞面)’은 점심시간 전인데도 이미 자리가 대부분 차 있었다. 포장된 음식을 찾아가는 배달 기사들도 끊임없이 매장을 드나들었다. 여기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식당이 14개 있는데, 이 중 세 곳이 허푸라오몐과 같은 국수 전문점이다. 나머지 11곳 식당은 모두 다른 메뉴를 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수 전문점의 수요가 그만큼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비 심리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중국 요식업 불황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지만, 국수업계만큼은 ‘불황형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한 그릇에 30위안(약 5600원)이 넘지 않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소비자의 얇은 지갑을 파고들면서 경기 침체 속에서도 26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했다. 다만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그만큼 국수 전문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가격 경쟁으로 인한 성장세 둔화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22일 중국 계면신문에 따르면, 쓰촨성·충칭시 스타일의 국수를 판매하는 위젠샤오몐(遇见小面)은 지난달 말 전국 매장 수가 300개를 돌파했다. 올해 말 400개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2014년 광저우에서 출발한 위젠샤오몐은 지난해 7월에서야 매장 수 200개를 넘긴 바 있다. 9년간 연평균 약 20개씩 매장이 늘어났는데, 최근 들어 1년 반 만에 200개 매장이 새로 문을 여는 것이다. 지금은 홍콩에 매장이 단 한 곳에 불과하지만, 5년 안에 100개를 추가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내놨다.
중국 국수업계의 이같은 호황은 전체 요식업 분위기와 대비된다. 중국 신성장연구소는 기업정보플랫폼 톈옌차를 인용해 올해 1~6월 폐업으로 등록이 취소 및 정지된 요식업체가 105만6000개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만 135만9000개의 요식업체가 문을 닫았는데, 올해는 반기 만에 연간 수치에 육박한 것이다. 2022년부터 베이징에서 윈난 음식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후모씨는 “테이블당 평균 소비액이 30~40% 감소했다”며 창업 초기 빌린 450만위안(약 8억5000만원)을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다고 연구소에 말했다.
이는 중국인들의 여윳돈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소득에서 세금·이자 등 고정비용을 빼고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을 뜻하는 1인당 가처분소득은 올해 상반기 2만773위안(약 395만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4% 늘어났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 증가폭(6.5%)보다 둔화한 것이다. 이에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월 적게는 12.4%, 많게는 43.8%까지 급성장했던 월간 요식업 매출의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올해는 4~6%대에 불과한 상태다.
이런 소비자들의 얇은 지갑을 국숫집이 ‘가성비’를 앞세워 파고들었다는 분석이다. 허푸라오몐은 지난해 30위안이 넘는 메뉴들 탓에 ‘국수 암살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지난해 말에 한 차례 가격을 인하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16~29위안(약 3000~5500원) 사이의 신메뉴들을 출시했다. 이마저도 회원 가입을 하면 절반 가량의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신메뉴 출시 후 매출은 35%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위젠샤오몐 역시 대표 메뉴가 24위안이고, 대부분 30위안 아래로 가격이 책정돼 있다. 중국 화징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국수 전문점 시장 규모는 1370억위안(약 26조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년 대비 15% 증가한 수치다.
다만 국수업계의 이러한 성장세가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당장의 수요만 보고 뛰어드는 이들이 많은 데다, 허푸라오몐과 위젠샤오몐 등 대형 프랜차이즈의 공격적 확장 때문에 가격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책정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계면신문은 “현 소비자 환경에서는 국수 전문점 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라며 “수요는 높지만 그만큼 브랜드 수도 많아 결국 모두가 저가 전략을 취하게 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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