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고등학교 지구과학 과목 담당 교사가 시중에서 판매하는 교재 속 문항을 그대로 베껴 1학기 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낸 사실이 드러나, 학생들이 재시험을 치르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2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송파구의 ㄱ여고 학생 98명은 지난 19일 방학식을 앞두고 지구과학I 과목의 기말고사를 다시 치렀다. 이미 기말고사 성적 입력까지 완료된 상황에서 재시험을 보게 된 건 해당 과목 문항 30개 가운데 대부분이 특정 문제집 등에서 그대로 베낀 것임이 뒤늦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학교는 지난 17일 “지난 2일에 실시한 본교 1학기 기말고사 지구과학I 선택형 문항에서 ‘이비에스(EBS) 개념 완성’ 등에서 전재한 문항이 다수 발견돼 학업성적관리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재시험을 실시한다”고 공지했다.
실제 학교 쪽이 제시한 이비에스 문제집과 시험지를 비교해보면 10개 문항이 문제, 보기, 삽화, 선지까지 완전히 똑같다. 가령 이 학교 기말고사 22번은 황사 관측 일수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데 나란히 놓인 한반도 지도부터 보기, ①~⑤ 까지의 선지 배열까지 동일하다. 문제 번호와 칼라(문제집)와 흑백(시험지)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학교는 해당 문제집 외에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모의평가 등에서도 문제가 그대로 출제된 것으로 파악했다. 학교 관계자는 “전체 문항 30개 중 몇 개의 문항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당수가 기출 문제나 시중 문제집에 나온 문제였다”며 “기존 기말고사 시험은 공정성을 잃었다고 판단해 교육청과 상의해 전체 시험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고등학교 학업성적관리 시행 지침’은 시판 중인 참고서 등의 문제를 전재하거나 일부 변경해 출제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특정 문제집을 푼 학생에게만 유리한 시험이 될 수 있는 탓이다.
재시험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재시험으로 내신 성적이 엉키게 된 학생들의 울음으로 ㄱ여고 방학식은 엉망이 됐다고 한다. 시험을 다시 치른 ㄴ(17)씨는 “앞서 중간고사 때 1등급을 가릴 수 없었던 상황이라 친구들이 모두 기말고사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며 “이번 시험으로 1학기 지구과학 1등급을 받은 학생 4명 중 2명은 2등급으로 떨어졌고 2등급과 3등급에서도 변동이 많아서 그날 학교에선 울음 소리만 들렸다”고 말했다.
학교 쪽은 “(교사가 시험문제를 그대로 낸 경위는) 아직 파악 중”이라며 “성적 이의 신청을 받고 있고, 학생 개인별로 등급 변동이 조금씩 있지만 전체적으론 차이가 많이 나지 않게 내신 등급이 배분됐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윤연정 기자 / yj2gaze@hani.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