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원인이 서울시를 이승만 특별시로 바꿔 달라는 생떼를 써서 끊지도 못하고 한창 입씨름을 했다. 이런 민원 전화를 받으면 하루종일 멘털이 나간다.”
입직한 지 만 3년이 안 된 한 서울시 공무원의 토로다. 이 같은 황당 민원은 드문 일이 아니다. 관련 법령을 집요하게 물어서 한참을 찾아 상세히 알려주니 아니라고 반박하고 끊어버리는 전화, 받자마자 끊는 행위를 여러 번 반복하는 전화, 당장 제도를 바꿔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한 시간 넘게 협박하는 전화 등이다. 이 같은 민원은 모두 한 달 사이 한 공무원에게 일어난 일이다. 심지어 이 공무원은 사업부서도 아닌 지원부서 소속이다.
최근 악성 민원에 시달린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공무원 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으나 현장은 여전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3월부터 5월 사이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시도 교육청 등 300여 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석 달 새 발생한 악성 민원은 2784건이었다.
상습적·반복적으로 같은 내용의 민원을 넣는 경우가 1340건, 폭언과 폭행·협박 등이 1113건으로 90%를 차지했다. 담당 공무원 이름이나 소속, 전화번호 등을 공개하는 이른바 ‘좌표 찍기’도 182건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지도에 불만을 품고 염산 테러를 예고하거나 현금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면서 협박을 일삼는 사례 등이 있었다.
서울시, 경기도 등 지자체들은 일선에서 민원 전화를 받는 6급 이하 공무원들의 실명을 비공개 처리하고 있다. 정보 안내에 지장이 업도록 담당 업무를 상세히 공개하고, 실명 대신 ‘주무관’이라고만 기재한다. 악의적인 좌표 찍기로부터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또 행정안전부는 악성 민원 피해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이 필수보직 기간에도 전보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충분한 조치는 아니다. 여전히 민원인의 전화에 대처할 방법은 없다. 출입 통제 장치가 없는 외부 사업소 등에는 담당자 이름을 외치며 위협하는 민원인도 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린 공무원들은 병들어가고 있다. 공무원들이 정신질환에 걸리는 확률이 타 산업 종사자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혁신처가 공무상 재해 승인 건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2년 정신질환이 274건으로 가장 많았다. 또 1만명당 정신질환 요양자 수를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공무원 재해율은 산업재해율 대비 11배나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10여 년 전 서울시가 다산콜센터 상담사에게 한 번만 성희롱을 해도 법적 조치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시행한 후 악성 민원전화가 92.5%나 줄었다. 악성 민원을 뿌리 뽑기 위해 지난 9일 정부·지자체·노조가 협의체를 구성했다. 행안부는 민원처리법, 정보공개법 개정과 함께 폭행·위협까지 일삼는 민원은 처벌돼야 한다고도 했다. 악성 민원은 강력히 처벌할 수 있다는 신호가 가장 강력한 보호 대책이다. 공무원 보호를 위해 고강도 대책 마련을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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