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가 전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들이 기존 주사제 형식을 넘어 입으로 섭취 가능한 경구용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구용 의약품은 주사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복용 편의성을 높여 지속 가능한 치료 환경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주사제 대비 다소 낮은 효능과 더불어 위장 관련한 부작용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비만치료제 ‘CT-996’의 임상 1상 CT-996-201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공개했다. CT-996은 비만 및 2형 당뇨병 치료제로, 1일 1회 경구용 저분자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작용제다.
로슈는 이번 임상에서 2형 당뇨병을 동반하지 않은 성인 비만 환자 또는 과다체중 환자를 대상으로 CT-996의 안전성, 내약성, 약물체내동태 및 약물동력학적 특성 등을 평가했다. 그 결과, CT-996을 복용한 피험자 그룹의 경우 플라시보 대조그룹과 비교했을 때 4주 이내에 체중이 평균 6.1%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안전성도 확인됐다. 회사는 CT-996의 내약성이 좋으며, 대부분 경증 또는 중등도의 위장 관련 부작용은 다른 체중 감량 약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임상은 로슈가 비만약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 바이오 기업인 카못 테라퓨틱스(Carmot Therapeutics)를 인수한 뒤 나온 결과다. 로슈는 높은 체중 감량 효과와 근육 손실을 예방하는 GLP-1 계열 이중 작용제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3조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해당 기업을 인수했다.
로슈의 최고 의료 책임자인 레비 개러웨이(Levi Garraway)는 “경구용 GLP-1 제제 CT-996을 복용한 환자들에게서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체중감소가 관찰됨에 따라 환자들에게 지속적인 체중관리와 혈당 수치 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화이자도 경구용 GLP-1 개발전에 참전했다. 화이자는 올해 하반기 내 1일 1회 복용하는 GLP-1 비만치료제 ‘다누글리프론’의 임상시험에 돌입할 예정이다.
다누글리프론은 GLP-1 수용체 유사체를 소분자 화합물로 개량한 경구용 의약품으로, 앞서 회사는 1일 2회 복용하는 방식의 임상 2상을 진행한 바 있으나 참여 환자 대부분이 메스꺼움과 구토 등의 부작용용을 경험해 시험을 중단한 바 있다.
다만 화이자는 임상을 통해 다누글리프론에 효능을 확인, 복용 빈도를 낮춰 임상을 재개했다. 화이자가 다누글리프론 1일 1회 복용 초기 연구를 실시한 결과, 1400명 이상의 건강한 성인 지원자에서 간 효소 상승이 관찰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화이자는 코로나19 이후 백신·치료제 개발 이후 급격히 떨어진 매출을 되살리기 위한 대안으로 비만치료제를 선택, 다누글리프론 임상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는 등 공을 들이는 모습니다.
미카엘 돌스턴 화이자 R&D(연구개발) 최고과학책임자는 “다노글리프론은 1일 2회 제형에서 이미 우수한 효능을 입증했기에 1일 1회 제형이 GLP-1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비만치료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노보 노디스크 역시 기존 주사제 형식이던 ‘위고비’를 경구형 방식으로 제형 변경하는 연구 ‘오아시스 4’를 진행 중이다. 회사는 초기임상을 통해 위고비의 경구용 제형이 주사 요법과 동등한 효능을 갖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아가 이미 노보 노디스크는 2019년 비만치료제와 같은 GLP-1 제제인 리벨서스를 선보인 바 있어, 업계는 위고비의 경구용 제품 개발도 빠른게 진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디엑스앤브이엑스(DXVX)가 경구형 GLP-1 비만 치료제 개발을 선언했다. 디엑스앤브이엑스는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이사의 개인 회사다.
회사 측 관계자는 “자사가 개발 중인 비만치료제가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증대시켜 체중 감소를 유도하는 호르몬을 통해 비만 치료 효과를 발휘한다”고 주장했다.
디엑스앤브이엑스도 앞선 글로벌 제약사들과 같이 하루 한 번 경구로 복용 가능한 방식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회사는 자사 AI 기반 혁신 신약 디자인 기술을 통해 올해 안에 최소 2개 이상의 물질 특허를 제출한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이들이 경구용 비만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곧 주사 형식의 치료제가 난립하기 시작하면서 관련 시장이 포화될 것이란 전망과 더불어 미국과 유럽 등에 ‘바늘 공포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은 어린이 3명 중 2명, 성인 4명 중 1명이 바늘 공포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경구용 치료제에 대한 부작용 여부와 주사제에 비해 다소 낮은 효능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경구용 치료제를 개발 중인 제약사들은 임상 시험 중 일부 참가 환자들이 메스꺼움과 복통 등을 호소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또 펩타이드 의약품의 경우 경구 투여 시 생체 이용률이 매우 낮아 주사제에 비해 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들도 다수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노보 노디스크가 세마글루타이드 비만치료제로만 25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만큼 전 세계 초거대 제약사들이 모두 비만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라며 “하지만 주사제 치료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경구용 비만 치료제를 개발해 시장 선점을 노리는 기업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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