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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으로 ‘미래 계획’ 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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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청년 일터인 푸르메소셜팜(경기도 여주 소재). 농업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직무로 원하는 업무를 부여하고, 자연이 주는 치유 효과까지 줄 수 있는 곳입니다. 2020년 10월 1기 직원 15명으로 시작해 현재 54명의 발달장애 청년이 정직원으로 근무합니다(무이숲 직원 포함).

비장애 청년들에게 취업이 최대 화두이듯, 발달장애 청년에게도 일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쩌면 취업은 발달장애 청년과 그 가족에게 더 절실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일자리’는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일하면서 이들은 어떻게 성장하며 달라졌을까요? 이들에게 맞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요? 이와 관련하여 지난 6월 이지선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한기명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연구부 부연구위원과 함께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농업 분야 표준사업장에서의 취업 초기 경험에 대한 질적연구(한국장애인복지학, vol. 64, 2024)’를 발표했습니다.

푸르메소셜팜에서 정직원으로 일하는 발달장애인 근로자의 취업 초기 경험과 변화 등을 탐색해 장애인 당사자의 직무만족도, 농업 분야에서 표준사업장이 갖는 일자리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고자 진행한 연구입니다. 발달장애인 근로자와 가족, 직무지도원과 관리자 등 19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그 연구 결과에서 발달장애 직원들의 취업 후 변화와 발달장애인 일터가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점 등을 2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합니다.

▲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의 근무 모습. ⓒ푸르메재단

직장인으로서의 책임감·협동심 강해져

취업 후 발달장애 직원들에게 생긴 변화는 다양합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책임감’입니다. 푸르메소셜팜은 발달장애인을 정직원으로 채용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보호 대상이 아니라 한 명의 ‘직업인’으로 대하지요. 발달장애 직원들은 입사 후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일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꾸준히 일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갖게 됐습니다. 더 이상 장애인복지관에 다니는 학생(이용자)이나 보호받는 입장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다른 장애인 및 비장애인 직원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취업 초기와 달리 정해진 시간이나 규칙을 잘 지키는 태도도 자리 잡았습니다.

“제가 일할 때는 집중하거든요.”(참여자 A5)

“저는 여기서 열심히 해요. 잘하지 못해도 노력하면 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좀 강해요.”(참여자 A10)

“(연구자: 일 끝나고 집에 가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세요?) 일을 열심히 잘하고 있구나. ‘내 자신이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구자: 그럼 일하러 오실 때는 어떤 생각을 하세요?) 실수 없이 잘해야지. 제가 리프트 탈 때 자꾸 떨어뜨려서 그게 좀 제 생각에는 실수였다 생각해서, 그 실수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참여자 A5)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휴식하고, 퇴근하고…. 그러면서 시간관념이 좀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이제 학생 아니고 직장인이니까. 회사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 이런 거를 좀 더 잘 지켜야겠다고 다짐해요. 이제 어른이니까.”(참여자 A6)

또 다른 변화는 대인관계입니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한 동료,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동료가 많아서 출근하는 게 기분 좋고, 일이 힘들 때도 동료와 함께여서 재미있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동료와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거나 조용히 일하고 싶은 직원들은 이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에서 경험하듯 인간관계는 늘 좋지만은 않습니다. 인간관계가 형성되면 자연히 그 속에서 갈등도 생겨나지요. 발달장애 직원들은 이러한 갈등 상황을 만나고 해소하며, 자연스럽게 대인관계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 와서 친한 친구들이 생겼어요.”(참여자 A3)

“제가 00하고도 친하고. 두 명도 또 친하고 있어요. 잘 지내고 있고.”(참여자 A1)

“일하는 데 힘들지만 00이랑 형이랑 같이 일하는 게 정말 재밌는 것 같아요.”(참여자 A5)

“여기 오면 따른 동료도 많으니까. 기분이 좋아요.”(참여자 A11)

▲ 출처: 이지선․한기명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농업 분야 표준사업장에서의 취업 초기 경험에 대한 질적연구(2024)>

내 힘으로 돈 번다는 자부심이 가장 큰 기쁨

직장이 생기면서 무엇보다 좋은 점은 집안을 벗어나 사회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은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운 좋게 복지관이나 주간보호시설 등에 들어가도 대기자가 많아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자리를 내어줘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재활하고 공부해도, 학교 교육을 마치고 나면 더는 갈 곳이 없어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푸르메소셜팜 직원들도 취업 전에는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냈지요. 그래서 취업은 집 밖으로 나와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에게 의미가 깊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고, 각자의 통근 방법으로 푸르메소셜팜에 도착해서 ‘오늘의 할 일’을 살펴보며 동료와 인사를 나누고,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는 보통의 하루. 귀가해서 가족과 이야기할 수 있는 나만의 일상이 생긴 것이 이들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연구자: 일 안 했으면 어땠을 것 같아요?) 음…. 조금 슬펐을 것 같아요. 집에 계속 있으면 심심할 것 같아요.”(참여자 A11)

“(연구자: 일 시작하고 제일 좋았던 것은 뭐였어요?) 음…. 이렇게 나올 수 있는 데가 있다는 거요.”(참여자 A10)

직장인으로서 자부심도 생겼습니다. 발달장애 직원들은 일을 시작하고 나서 가족으로부터 직장인이 되었으니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직무에 도전하면서 재미를 느끼며, 일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연구자: 일하고 나서 부모님이 00님에 대해 하신 말씀 있나요?) 이제 진짜 어른 됐네. 이제 어른 됐으니까 이제 학생 때랑 다르니까 더 잘해라 (하셨어요).”( 참여자 A6)

“일하는 게 재미있어요. 온실에서 리프트 타면 높이 올라가고 위에서 줄을 풀고 걸고, 좀 신경써야 되는 게 많은데 보람차요. 재밌어요. (연구자: 계속 일하고 싶으세요? 계속 얼마나 더 하고 싶어요? 1년, 2년, 10년?) 예, 10년까지는(더 하고 싶어요).”(참여자 A1)

▲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의 근무 모습. ⓒ푸르메재단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번다’는 사실은 발달장애 직원을 삶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내 힘으로 번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놀랍고 기쁜 일이었다고 합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생활비를 보태고, 가족과 외식하거나 그동안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일처럼 보이겠지만, 발달장애 직원과 그 가족에게는 꿈과도 같았던 일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미래의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며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가족의 품을 떠나 오롯이 서는 ‘자립’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을 여기서 안 했다면 제가 돈을 못 벌잖아요. (중략) 아무것도 안 했더라면 제 마음은 좀 속상해요.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버니까.”(참여자 A5)

“(연구자: 첫 월급 받고 어떻게 사용하셨어요?) 첫 월급 받고, 엄마한테 커피머신 사줬어요. 9만 9천원이요. (연구자: 엄마 너무 좋아하셨겠어요.) 네, 좋아했어요. (연구자: 월급 탔을 때가 더 좋았어요, 엄마 선물했을 때가 더 좋으셨어요?) 엄마 선물 했을 때.”(참여자 A8)

“적금 부었어요. 50만 원. 나머지는 용돈이었어요. 제가 돈 벌어서 엄마 아빠한테 맛있는 거 사 드리려고. (연구자: 돈으로 뭐 사신 게 제일 기억에 남으세요?) 에어팟, 에어팟.”(참여자 A5)

“전부 다 저금했어요. 왜 저금하냐면, 제가 나중에 장가가려고…. 나중에 돈 더 많이 모아서 사귈 거예요.” (참여자 A1)

“계속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이사 갈 수도 있고. (연구자: 어디로 이사 가고 싶으세요?) 일단은 저기 00쪽에 00아파트.”(참여자 A2)

“그동안 받았던 월급으로 퇴직하면 가게를 차리던지 해야죠. 조그만 가게요.”(참여자 A9)

푸르메소셜팜 입사 후 발달장애 직원들이 보여준 변화는 다양합니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주어진 직무를 해내기 위한 훈련과 노력을 반복하면서 업무에 숙련되어 생산성이 3~4배 높아졌으며, 위생과 용모를 가꾸는 등의 기본 생활 태도가 좋아지고 직장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시간관념이나 태도가 개선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표정이 밝아졌으며, 고맙다는 표현이나 수고했다는 인사를 포함하여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등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직장에 다닌다는 자부심,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했던 보호작업장과는 달리 매달 일한 만큼의 월급을 받는다는 자부심으로 자세 역시 당당해졌습니다. 발달장애 청년이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자립을 준비할 기반을 만드는 일은 앞으로 가족, 더 나아가 사회의 부양 부담을 줄이는 첫걸음이 됩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자리가 필요한 이유이지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터를 만들면서 고려해야 할 점도 많습니다. 직원 개개인의 장애 특성이나 성향에 맞는 적절한 직무 배치와 관리 방법 등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요. 발달장애인이 잘할 수 있도록 직무를 세분화하고, 그에 맞는 직무교육과 훈련 과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한 푸르메소셜팜의 사례를 2편에서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2편에서 계속)

▲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의 근무 모습. ⓒ푸르메재단

*위 글은 비영리공익재단이자 장애인 지원 전문단체인 ‘푸르메재단’의 글입니다.(☞ 바로 가기 : http://purm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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