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36조에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양성’, 남성과 여성이 부부로 맺어질 때만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여태까지 한국에서 동성 간의 혼인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어요. 위법은 아니지만, 남녀 부부처럼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건데요. 즉 사실혼 상태인 동성 커플의 경우, 한쪽 배우자가 다른쪽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상 처음으로 민법상 이들의 법적 권리를 인정한 판례가 등장한 겁니다.
판례의 주인공 소성욱씨는 동성 연인 김용민씨와 2019년부터 사실혼 관계였습니다. 그는 2020년 공단에 자신이 김용민씨의 동성 사실혼 부부이며,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해 줄 것을 요청했고 당시 자격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 후, 공단은 ‘업무 착오’라는 이유로 소성욱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하고 건강보험료를 부과했죠. 소성욱씨는 자신들이 동성 커플이라서 한쪽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법이라며 공단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22년 1심은 이성 간 사실혼 배우자만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며 소성욱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2심에선 판결이 뒤집혔습니다. 사실혼 성립까진 인정하지 않지만, 공단이 합리적 이유 없이 ‘동성 동반자’ 소성욱씨를 여느 사실혼 배우자와 차별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거죠. 하지만 공단은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올 3월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18일, 대법원은 소성욱씨가 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사실혼 관계 집단에 있어 이성혼과 동성혼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걸 인정한 판결로도 읽히는데요.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는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공단이 피부양자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이가 없다”라고 봤습니다. 이 판결이 다른 사회보장제도에도 영향을 미칠 지 주목해 볼 만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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