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도바는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내륙 공화국이다.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인구도 350만 명 수준이다.
그러나 와인 애호가들은 몰도바를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 몰도바는 2021년 기준 세계 14위 포도 재배 면적을 가지고 있다. 14만 헥타르로, 국토 4.2%가 포도밭이다. 몰도바 와인 협회는 국민 1인당 포도나무 그루 수를 따지면 세계 1위라고 자랑한다.
포도나무가 많고 포도밭이 넓다고 와인 강소국으로 불리진 않는다. 몰도바는 와인 생산량과 수출 실적도 여타 유명 와인 생산국에 뒤지지 않는다.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몰도바 와인 생산량은 세계 20위권이다. 와인 수출량은 세계 12위다. 작은 땅덩이를 생각하면 눈부신 성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몰도바 와인은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 2022년 기준 중량 기준 수입은 2021년보다 31.8%가 늘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40.1% 증가했다.
몰도바는 12세기부터 질 좋은 포도와 맛있는 와인이 나는 곳으로 유명했다. 한때 와인 종주국 프랑스인들은 몰도바로 건너와 수도원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와이너리를 재현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부르고뉴 지방은 세계 최고가 와인들이 나는 지역이다.
몰도바는 주요 와인 산지가 북위 46~47도에 자리한다. 부르고뉴와 위도가 같다. 일부 자연조건이 유사하지만, 아직 손이 닿지 않은 밭이 즐비하다. 이미 가격이 오를 만큼 오른 다른 유명 산지에 비해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1878년 파리 엑스포에서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은 몰도바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한 다음 명백한 프랑스 와인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란 종종 산지와 생산자 등 와인에 대한 정보를 가리고 순수하게 와인의 맛과 향, 질감으로만 평가하는 방식이다. 가격이나 지역에 대한 선입견 없이 좋은 와인을 고를 수 있어 엄격하고 공정한 평가가 필요할 때 자주 쓰인다.
푸카리는 몰도바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이름이자, 마을 이름이다. 푸카리 와이너리는 1827년 몰도바 드네스터강과 흑해 사이 푸카리라는 마을에 터를 잡았다.
프랑스와 독일 와인 생산자들은 이 마을이 가진 가능성을 눈여겨봤다. 이들은 자본을 투자해 푸카리 와이너리를 세우고 포도나무를 심었다. 곧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도 푸카리 와이너리를 몰도바 최초 공식 와이너리로 지정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니콜라이 1세는 푸카리를 베사라비아(Bessarabia) 지역 최초 와이너리로 지정하고, 와인 제조를 허가하는 특별 법령을 발표했다. 베사라비아는 러시아 제국 시절 몰도바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전폭적인 지원에 이어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푸카리 와인은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당시 상을 받은 네그루 드 푸카리(Negru de Purcari)는 2013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방한 때도 롯데호텔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 올랐다.
영국 조지 5세와 빅토리아 여왕, 그리고 엘리자베스 2세도 푸카리 와인을 애용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즉위식에 푸카리 와인을 사용할 정도로 애정을 드러냈다. 푸카리는 엘리자베스 여왕 사후에도 여전히 영국 왕실에 와인을 납품한다.
아카데미아 푸카리 비오리카는 푸카리가 만드는 와인 중에서도 프리미엄 등급에 속하는 와인이다. 연간 생산량이 3250병 수준에 그친다. 와인을 숙성하는 참나무통을 기준으로 10통만 만든다.
이 와인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비오리카 품종을 암포라라는 점토 항아리에 넣어 숙성한다. 암포라는 고대 조지아에서 와인을 만들 때 사용했던 토기다. 적게 잡아도 8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토기는 훗날 고대 그리스에 전해져 오늘날 동유럽과 지중해 와인 양조 기술에 초석을 다졌다.
푸카리 역시 옛 방식을 그대로 살려 와인을 만든다. 포도 껍질이나 씨를 제거하지 않고 천천히 자연 효모로 발효한다. 이후 잔여물을 거르지 않고 참나무통에서 추가로 숙성해 병에 넣는다. 독특한 양조 방식 덕분에 화이트 와인이지만 색상이 짙은 금색을 나타낸다.
아카데미아 푸카리 비오리카는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로제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화강주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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