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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조명 ‘아카리’가 만들어지기까지

엘르 조회수  

전기의 가혹성이 종이라는 마법을 통해 세상의 근원인 태양의 빛으로 바뀌어 밤마다 우리의 방을 따뜻하게 채워줄 것이다. by 이사무 노구치

어두운 밤하늘을 은은하게 밝히는 보름달 같기도 하고 한낮의 태양 같기도 한 신비롭고 아련한 비주얼의 아카리 조명. 근사한 인테리어 사진을 보면 늘 아카리 조명이 소박하게 공간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도쿄 닌교초 역에 가면 아카리 조명 시리즈를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쇼룸이 있다는 사실, 아셨나요? ‘더 많은 사람이 일상 속에서 조각을 부담 없이 즐겼으면’ 하는 노구치의 마음을 반영한 듯 지극히 소박한 모습으로 아카리의 역사와 제작 과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죠.

일본어로 빛, 밝음을 뜻하는 아카리(AKARI)라는 세계적인 조명을 디자인한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입니다. 지금부터 한 편의 동화 같은 그의 일생에 귀 기울여 보세요. 감성 인테리어를 위한 도구로만 생각했던 아카리가 새롭게 보일 거예요.

190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인이었던 일본인 아버지와 작가였던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사무 노구치(ISAMUNOGUCHI). 미국 유학생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이사무 노구치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헤어졌고 어머니는 홀로 노구치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를 찾으러 일본으로 갔지만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성과 결혼한 상태였고, 어쩔 수 없이 그는 미혼모 어머니와 함께 낯선 땅에서 살며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따돌림을 견디며 말이죠. 10년 뒤 어머니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콜롬비아 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했지만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학교를 자퇴합니다.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된 노구치는 당대의 유명한 모더니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스튜디오에 들어가 조수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조각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그가 중견 작가로 성장하고 있을 무렵 더욱 강하게 찾아옵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미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시작됐고, 일본인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 싶었던 노구치는 일본인 수용소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수용소의 일본인들마저 그를 미국의 스파이라고 생각하며 외면하였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그는 분노와 외로움에 몸서리치게 됩니다. 미국인도 일본인도 아니었던 그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부르며 반평생을 외톨이로 살았습니다.

분노와 혼란의 감정을 오직 작품 활동으로 분출하며 아티스트의 삶을 이어가던 그는 1951년, 히로시마 기후 지방 행사에 초청을 받고 일본을 방문하게 됩니다. 일본 전통 연등을 만드는 오제키 공장을 견학하게 된 그는 그 단순함과 유연함에 매료되어 단숨에 두 개의 연등을 디자인합니다. ‘와시’라 불리는 일본식 수제 종이와 대나무 뼈대를 사용하여 제작한 아카리 조명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당시 조명을 디자인하며 그가 떠올린 건 ‘따뜻함’이었습니다. 어린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주던 어머니의 품과 창호지 문틈으로 스며들던 달빛의 편안함이 영감의 원천이었죠. 지극히 심플하고 담백한 이 조명에서 아련함이 묻어나는 것은 이렇듯 그의 개인사와 어린 시절의 아픔이 고스란히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작품에 아카리(AKARI)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따스한 햇볕과 달빛을 방으로 깊이 끌어들이고 싶었거든요.

그 후로도 다양한 형태의 아카리 조명 디자인에 열중한 그는 100개 이상의 변형 모델을 만들어냈습니다. 아카리 시리즈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 조명으로 미술계를 사로잡았고 뉴욕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아카리를 조명하는 전시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오제키 도쿄 쇼룸에 가면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은 물론 아카리 조명 제작 과정, 생산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전시 형태로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답니다.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을 눈으로 직접 보고 구매도 할 수 있으니, 특별한 도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방문해 보세요.

OZEKI TOKYO SHOWROOM
주소 1 Chome-2-6 Nihonbashiningyocho, Chuo City, Tokyo

엘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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