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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먹거리 생태계] 키즈카페·군대까지 침투한 ‘가짜 메이드 인 코리아’…국내산이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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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먹거리 생태계] 키즈카페·군대까지 침투한 '가짜 메이드 인 코리아'…국내산이 죽어간다
지난 2월 서울 명동거리 음식점 앞에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 씨는 최근 원산지 표기로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단속에 적발됐다. A씨는 “다른 재료의 원산지를 적는 과정에서 타이핑 실수로 표기가 헷갈리게 쓰여 적발됐다”고 해명했다. A씨처럼 최근 한 달 간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공표된 원산지 위반 품목은 부세뿐 아니라 참돔·고등어·낙지·명태 등 열댓개가 넘는다.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 최대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대부분 위반사항에 부과하는 과태료는 훨씬 적어 A씨가 내야 할 돈은 100만 원 이하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서초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60대 B 씨는 “가정의 달이었던 올 5월 이후 손님이 급감해 오후 1시가 지나면 장사가 되지 않는 수준”이라며 “사실상 무급 노동에 마이너스 매출을 기록하는 중인데 손님들이 고기 가격 1000원~2000원 인상에 예민해 쉽게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B 씨는 손님들이 수입산을 고기를 기피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심정으로 국내산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고물가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원산지 위반 식품이 시장에 크게 늘면서 먹거리 안전뿐 아니라 국내산을 쓰는 자영업자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출처불명의 식품이 식단관리에 가장 민감한 군대와 키즈카페까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원산지 위반 행위의 주요 원인이 국내산과 수입산의 큰 가격차에 있는 만큼 이에 대한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4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관리원)의 원산지표시 위반 및 처분 현황에 따르면 2019년 3억 5588만 원이었던 과태료는 지난해 5억 3968만 원으로 51.6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원산지 둔갑’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식자재 원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비교적 값이 저렴한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속여 이득을 취하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농림수산품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분기 110.06이었으나 올 1분기에는 122.21로 1년 만에 급증했다.

본지가 서울 서초구·동작구·영등포구·종로구 등 도심 식당가 일대를 둘러본 결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식자재 가격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동작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C 씨는 ‘뉴질랜드산’ 소고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C 씨는 “김 값이 100장에 6000~7000원에서 올해 1만 3000원 수준으로 2배 이상 급증해 보통 사두는 물량의 70% 수준만 구매해 놓았다”며 “소고기마저 국내산을 사용하면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산지를 속인 상품까지 시중에 나돌면서 자영업자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원산지 위반은 식당뿐 아니라 키즈카페·군부대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리원 충남지원은 지난 2월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군부대에 조달하는 식품업체에 외국 축산물 222톤을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한 혐의(농수산물 원산지 표시 위반)로 축산물 유통업체 관계자를 검찰에 넘겼다. 올 4월에는 대전·세종·충남 지역 키즈카페 97곳을 대상으로 집중 점검을 실시한 결과, 원산지 거짓 표시 업체 4곳과 원산지 미표시 업체 6곳이 적발됐다. 특히 성장기 유아·어린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키즈카페까지 ‘가짜 국내산’이 쓰이면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미취학 자녀를 둔 40대 주부 황 모 씨는 최근 여러 키즈카페들이 대대적인 원산지 위반 단속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많다. 황 씨는 “아이들이 먹는 키즈카페 음식에도 수입산이 쓰인다는 사실이 놀랍고 제대로 기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상기후와 고물가가 길어지면서 원산지 둔갑의 원인이 된 국내산과 수입산 간 가격 차이는 농축수산물 등 1차 산업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한국인이 가장 즐겨먹는 반찬인 김치는 중국산에 밀려 국내산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입식품정보마루에 따르면 지난해 김치 수입량은 28만 7180만 톤에 달한다. 2021년 24만 3100톤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 18% 증가하는 등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최근 시세를 보면 중국산 김치는 상급이 10㎏에 1만 3000원대이고 국산 김치는 3만 원대가 넘어가다 보니 차이가 크다”면서 “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산 김치를 쓰던 사람들 대부분이 수입산으로 넘어갔다”고 전했다.

위탁급식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D(60)대표가 운영하는 급식위탁업체는 학교에서 직접 급식을 제공하지 않는 방학 기간 돌봄급식이 주요 매출원이다. D 대표는 “식재료값이 오르다 보니 지난 겨울에 식대를 500원 올려 현재 유치원은 5500원, 초등학생은 6000원을 받고 있지만, 감당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내년에는 또 식대를 올려야 할 것 같다”며 “특히 어묵·햄 등 가공품 가격은 20~30% 인상이 우스운 수준이다. 우리는 국내산 위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올해 들어 단가를 맞추기 위해 돼지고기도 수입산을 쓰기 시작했다. 장기적으로는 수입산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산지 위반 증가를 억누르기 위해 단속 강화와 함께 수입산보다 비싼 국내산을 사용해도 자영업자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식재료가 인상되면서 외식 물가가 오르고 소비자들의 구매도 줄다 보니 외식 사업자들의 매출은 감소하는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다”라며 “원산지 표시는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규제하는 한편,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려는 자영업자들의 활로를 모색하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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