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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KIST’, 혁신 DNA로 ‘韓 과학 패러독스’ 극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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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과학기자단 간담회 자리에서 “연구자들이 잃어버린 연구 본능과 잠들어 있는 야성을 다시금 일깨우고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에 부응하겠다”고 말했다./ 박설민 기자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과학기자단 간담회 자리에서 “연구자들이 잃어버린 연구 본능과 잠들어 있는 야성을 다시금 일깨우고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에 부응하겠다”고 말했다./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그 어느 때보다 국가 단위의 과학연구가 중요한 이 시기, 올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는 첫 발걸음부터 쉽지 않았다. 차기 원장 선임 문제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윤석진 전 원장의 임기가 끝난 가운데,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심의한 윤석진 전 원장 재선임안 및 차기 원장 선임안 등이 부결됐다. 이로 인해 출연연의 대표기관격인 KIST의 원장 자리에 8개월 간 공백이 생겼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26일, NST 정기이사회는 오상록 전 책임연구원을 제 26대 KIST 원장으로 선임했다. 오상록 원장은 앞으로 3년간 KIST의 수장으로서 한국 과학연구를 선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0일간 오상록 원장의 취임 기간이 지났다. 그동안 KIST는 얼마나 변화했을까. 또 앞으로 어떤 혁신을 위해 나아가게 될까.

◇ 오상록 원장, “잃어버린 연구자들의 야성을 다시 깨울 것”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지금 현실에 안주하는 성향이 강하다. 올해 KIST는 연구자들이 잃어버린 연구 본능과 잠들어 있는 야성을 다시금 일깨우고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에 부응하겠다.”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과학기자단 간담회 자리에서 이 같이 말했다. KIST를 포함한 국내 연구자들 다수가 과거에 영광에 안주, 편하고 안전한 성과가 나오는 연구에만 집중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25곳의 정부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은 한국 과학연구를 이끄는 선도자들이다. 그중 가장 선봉에 서 있는 곳은 단연 KIST다. 1966년 2월 설립된 KIST는 올해로 개원 58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과학 발전의 역사는 곧 KIST의 역사라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AI), 로봇, 재생에너지 등 4차 산업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KIST는 현재  인공지능(AI), 로봇, 재생에너지 등 4차 산업시대를 대비하기 연구를 수행 중이다. 사진은 KIST 연구 성과 및 향후 목표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고 있는 손지원 KIST 연구기획조정본부장./ 박설민 기자
KIST는 현재  인공지능(AI), 로봇, 재생에너지 등 4차 산업시대를 대비하기 연구를 수행 중이다. 사진은 KIST 연구 성과 및 향후 목표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고 있는 손지원 KIST 연구기획조정본부장./ 박설민 기자

하지만 오상록 원장이 말한 것처럼 KIST는 혁신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는 국내 연구 환경 문제가 주된 원인이다. 출연연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연구 프로젝트에 주어진 예산은 10억원 안팎. 연구 장비, 자재 비용 등을 제외하고 나면 프로젝트 참여가 가능한 박사급 인력은 2~3명 수준이다. 때문에 대형 프로젝트 수행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고 연구자들은 실패 위험이 적은 ‘안전한’ 연구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물리학회에서는 출연연 분석 보고서에서 KIST에 대해 “과거 KIST는 정부예산에 의해 운영돼 연구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연구비, 시설, 문헌 등 인프라 미비, 산업기술과의 격리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며 “현재도 이 같은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KIST 연구 성과 발표를 진행한  손지원 KIST 연구기획조정본부장도 “기술 패권 시대를 맞아 출연연들은 들어간 자원 대비 성과가 부족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안전하고 틀에 박힌 연구에 매진하는 ‘코리아 R&D 패러독스’에 대해 뼈아픈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오상록 원장은 “KIST를 포함해 우리나라 젊은 연구원들을 보면 세계 어디에 놔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실력을 갖췄지만 타오르는 열정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젊은 연구원들의 연구 본능을 다시 한 번 살려보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1966년 2월 설립된 KIST는 올해로 개원 58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과학 발전의 역사는 곧 KIST의 역사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한국 과학 연구를 선도했던 KIST는 이제 변화를 두려워하는 ‘늙은’ 연구원이란 오명이 따라 붙고 있다./ 박설민 기자
1966년 2월 설립된 KIST는 올해로 개원 58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과학 발전의 역사는 곧 KIST의 역사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한국 과학 연구를 선도했던 KIST는 이제 변화를 두려워하는 ‘늙은’ 연구원이란 오명이 따라 붙고 있다./ 박설민 기자

◇ 연구 혁신 나선 KIST, “축구팀처럼 운영하는 연구팀 만들 것”

과거 한국 과학 연구를 선도했던 KIST는 이제 변화를 두려워하는 ‘늙은’ 연구원이란 오명이 따라 붙고 있다. 이에 오상록 원장은 올해를 4차 산업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KIST의 새로운 도약의 해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최고의 연구환경 △도전의 혁신문화 △파급력 높은 연구결과 △탁월한 연구인력을 확보하겠다는 경영 철학도 밝혔다.

먼저 오상록 원장의 첫 번째 목표는 ‘컨트롤타워’ 구축이다. 이를 위해 KIST는 지난 1일 3개의 ‘임무중심연구소’를 우선 출범시켰다. 이 연구소는 KIST가 해야하고 KIST만이 할 수 있는 국가·사회적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법제시를 목표로 한다. 연구 분야는 △차세대 반도체 △AI·로봇 △청정수소융합 등이다.

임무중심연구소에 새롭게 도입된 개념은 ‘PM(프로젝트 매니저)’다. 연구소장, 연구과제 관리자 등으로 분류되는 PM은 임무설정에서 연구팀구성, 예산배분, 관리, 사업화까지 전주기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대신 PM은 자신이 직접 연구에 참여하는 ‘연구자’가 될 수는 없다. 쉽게 말해 축구선수가 연구원이라면 PM은 축구팀의 감독이다. 직접 경기(연구)를 뛰진 않지만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 승리(성과)를 쟁취하는 것이다.

오상록 원장은 “그동안 출연연들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연구소장, 연구과제 책임자가 직접 연구자로 참여해왔다”며 “이 경우 책임자 자신이 안전한 성과 창출에 무게를 두고 연구 성과를 타협해 혁신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PM제도 도입의 취지를 설명했다.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계획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PM으로 참여할 소장급 인재 영입을 위해 성과에 걸맞는 인센티브 제공, 연구지원 전문성 심화 등의 최상위 연구지원체계 조성에도 나선다. 또한 해외 선도 연구기관과의 협력 확장으로 KIST를 국가 과학 연구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오상록 원장은 “임무중심연구소의 출범은 비록 작은 출발에 불과하지만 몇 년 후에는 KIST의 연구 결과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손에 잡히는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며 “KIST는 세계적 수준의 전문성을 토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문제 해결에 전념하는 글로벌 일류의 품격을 갖춘 연구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한 여정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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