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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칼럼] 모두를 열받게 한 ‘시급 1만30원’

이투데이 조회수  

주필

해마다 노·사·공익 모두 불만 ‘반복’
이름뿐인 ‘사회적 대화’ 갈등만 키워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대론 안 된다


최저임금제가 처음 법제화한 것은 1894년 뉴질랜드에서였다. ‘산업조정중재법’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28년 ‘최저임금결정기구 창설에 관한 조약’을 계기로 열기 확산을 도모했다. 1929년 대공황이 뜻밖에도 좋은 불쏘시개였다.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임금 삭감을 금지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노동조합 교섭권을 강화하며 임금·제품 가격 통제에 들어갔다.

최저임금제는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자는 선의의 제도다. 그러나 박수갈채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평가가 엇갈린다. 미 석학 그레고리 맨큐는 자신의 경제 원론 교재에 동료 학자 79%가 “최저임금제가 시행되면 젊은 비숙련 근로자들의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명제에 동의했다고 기술했다. 그늘도 짙은 것이다. 실사구시를 원한다면 의도만 봐선 안 된다. 결과를 폭넓게 살펴야 한다.

2025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12일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표결을 거쳐 확정된 사안이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1만 원을 넘은 것은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37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 시급 9860원보다 1.7%(170원) 올라 인상률로는 2021년(1.5%)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다지만 마지노선 돌파는 낮춰 볼 일이 아니다.

최임위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중재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협상 주체들의 소회는 어떨까. 한국노총은 결정 당일 논평을 냈다. “실질임금 삭감”이란 내용이다.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사용자 측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절박함을 고려하면 동결됐어야 했다”고 했다. 역시 격한 반발이다. 업종별 차등화 무산에 대한 불만도 크다. 공익 측을 대표하는 이인재 최임위 위원장은 “현 결정 시스템은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진전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눈을 씻고 돌아봐도 긍정적 반응은 없고 분노와 불만투성이다.

하나의 결론으로 이렇게 모두를 열받게 하기도 쉽지 않다. 이번만 그런 것도 아니다. 최임위는 2008년 이후 매끄럽게 결론을 낸 적이 한 번도 없다. 매번 주먹구구 흥정을 하다 불협화음으로 끝장을 봤고, 얼굴을 붉히며 헤어졌다. 19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합의로 결정한 것은 단 7번뿐이다.

최임위는 독임제가 아닌 위원회다. 각계 전문가, 관계자를 모아 대승적 결론을 끌어내려는 제도다. ‘합의를 통한 결론’ 형식은 정부로선 든든한 방패다. 적어도 그렇게 기대됐기에 과거의 정부와 국회는 위원회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사회적 대화’가 갈등과 반목을 키우는 부작용만 내고 있다.

실질적 폐해도 견뎌낼 선을 넘어선 감이 짙다. 이번 결산서를 보자. 한국 특유의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자영업자·소상공인이 감당할 내년 최저임금은 1만30원이 아닌 1만2036원이다. 4대 보험 부담도 있다. 실질 시급은 1만2800원 안팎으로 불어난다. 올해 최저임금도 이미 아시아 최고 수준인데 내년이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전국의 수백만 자영업자·소상공인은 억장이 무너진다. 뭔 이런 결과가 다 있나. 같이 살자는 건가, 죽자는 건가.

현행 최저임금 결정 구조가 지속가능한지 총점검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서둘러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국가 체력과 시장 원리를 도외시한 ‘위원회 놀음’이 내년 이후에도 계속되게 마련이다. 근본적 개선을 위해선 법을 손보지 않을 수 없다. 당장 행정부와 입법부가 머리를 맞대고 새길을 찾아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비교한 최임위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네덜란드는 정부가 최저임금을 정하고 미국·칠레는 의회가 정한다. 그렇게 정치적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편이 백번 낫다.

후버·루스벨트의 최저임금 드라이브도 평가가 엇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대공황을 장기화한 최악의 실책으로 꼽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후버·루스벨트의 선택은 책임 주체가 명확히 존재한다. 우리 최저임금 구조와는 다르다. 정부는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결정 구조는 입법 사안이어서 즉각적인 전면 개조가 어려울 수 있다. 정치 지형상 현재로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행 위원회 구성 방식이라도 조정해 대표 편향성 문제 등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책임이 막중하다. trala2023@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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