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전력 사용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인공지능(AI) 열풍이 국내 변압기 시장 호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효성, HD현대 등 대기업에는 변압기 주문이 쏟아지면서 2년치 인도 물량이 매진됐으며 LS는 미국 공장건설을 추진 중이다.
변압기 열풍은 중소·중견기업 실적 개선으로도 이어졌다. 산일전기 등이 미국 수주에 힘입어 분기 영업이익 기록을 새로 썼고 가온전선·대원전선 등 역시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상황이다.
15일 전기장비 업계에 따르면 HD현대 계열사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은 변압기 주문 급증으로 2025년 인도분까지 수주를 마친 상태다.
특히 미국발(發) 수주량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HD현대일렉트릭의 올해 2분기 미국 수주액은 총 5억1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4.9% 증가했다. 효성중공업은 올해 1분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11.6% 증가한 2억1200만 달러 규모의 변압기를 수주했다. LS일렉트릭은 올해 2분기 총 4500억원의 변압기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중 28%가 미국발 주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의 미국 공장은 가동률을 100% 넘어서고 있으며 야간과 주말에도 직원들이 초과 근무를 하고 있다. 이미 미국 내 공장으로는 수주 물량을 따라갈 수 없어 한국 공장에서도 수출 물량을 늘릴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효성중공업은 667억원을 투자해 2026년까지 미국 멤피스 공장 생산능력을 두 배가량 높이기로 했다. 또 내년 하반기부터 국내 공장 증설에도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HD현대일렉트릭도 울산과 미국 앨라배마 변압기 공장에 각각 272억원과 180억원을 투자해 생산능력을 약 20% 확대할 계획이다.
LS일렉트릭 역시 올해부터 대미(對美)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미국 내 배전 공장 구축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효성중공업은 변압기, 회로 차단기 등 전기장비 가격을 2022년과 비교해 올해 20%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일렉트릭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인상했다.
국내 변압기 업계 호황 배경에는 AI가 있다.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AI가 발달하면서 관련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전력도 급증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대 알렉스 브리스의 연구에 따르면 표준 구글 검색은 1회당 0.3Wh(와트시)의 전력을 사용하지만 AI 기반 검색 엔진은 1회당 3Wh의 전력을 사용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한 전력 소비량은 전체 전력 수요의 2%에 해당하는 460TWh(테라와트시)였으나 2026년에는 데이터센터가 소모하는 전력량이 620~1050TWh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미국의 송전·배전 인프라 노후도 변압기 호황 원인 중 하나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내 배전 변압기의 약 70%가 장치의 평균 수명인 25년보다 오래됐다. 태양광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설치도 증가하면서 노후 배전 인프라 교체가 한창이다.
한국이 변압기 시장에서 중국보다 수혜를 입는 이유는 맞춤형 제품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변압기는 일반적으로 각 구매자가 요구하는 사양에 맞춰야 하는데 중국의 대량생산 시스템은 변압기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내 전력기기 업계의 호황은 대기업에 그치지 않고 중소·중견기업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중견 변압기 기업인 산일전기는 미국 수주에 힘입어 상반기에만 지난해 총영업이익을 넘어선 484억원의 영업익을 기록했으며, 오는 29일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앞두고 있다. 기업가치는 ‘변압기 시장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을 앞세워 9000억원의 몸값을 책정했다.
이 밖에도 가온전선, 대원전선, 재룡전기 등이 미국발 변압기 호황에 힘입어 기업가치가 오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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