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유승 기자 = “보호출산제 없이 출생통보제만 시행하면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겁니다. 위기임산부에게 원가정 양육을 끝까지 설득하겠습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 사무실에서 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오는 19일 의료기관이 신생아의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지자체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가 시행된다. 출생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아동이 유기·학대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이와 동시에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위기임산부가 가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도 도입된다.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위기임산부의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나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지만, 자칫 합법적 아동 유기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병원 밖 출산 줄이기 위한 제도…원가정 양육 끝까지 설득”
정 원장은 보호출산제는 아동 유기를 조장하는 제도가 아닌, 위기임산부가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텐데 병원 밖 출산을 줄이기 위한 제도 없이 출발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 원장은 아동권리보장원이 위기임산부 중앙상담 지원기관으로서 이들의 원가정 양육을 최대한 이끌어내겠다고 역설했다. 지원 제도 등 정보를 제공해 이들이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입양 대신 양육을 선택하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보호 출산의 결정은 출산 후 한 달 이내 이뤄지지만, 보호 출산의 철회는 입양이 되기 전까지 가능하다”며 “위기임산부를 상대로 계속해서 원가정 양육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위기임산부들은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시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한부모 가족 지원이나 미혼모 지원 등 굉장히 다양한 지원이 있다”며 “그런 것들을 상담 기관을 통해 찾아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저희와 한번 손을 맞잡은 분들을 끝까지 지원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이들의 알 권리 제고를 위해 정보 공개 청구절차를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아이의 청구와 부모의 동의가 모두 있어야 부모의 신원 정보가 제공된다.
정 원장은 “독일의 경우 (부모가 아이에게) 정보를 보여주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보여주지 않고 싶은 경우에만 비공개하는 ‘옵트 아웃’ 제도를 운영한다”며 “‘나는 절대로 정보를 보여주기 싫어요’ 하는 분들이 신청해서 비공개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독일의 그런 부분들은 가져오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제도를 시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도 시행 이후 어떻게 개선하고 보완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며 “한 달에 한 번 지역 상담기관과 찾아가는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법적·매뉴얼 상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아동이 행복해야 저출생 극복…비교·경쟁서 벗어나 ‘권리의 주체’ 인정해야”
정 원장은 항상 가슴에 ‘365일 아동의 날’이 적힌 배지를 거꾸로 달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가 365일 아동이 행복한 ‘아동의 날’이 아닌 만큼 더 나은 환경을 위해 힘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정 원장은 저출생 극복을 위해 ‘아이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원장은 “예전에 봤던 인터넷 댓글 중에 충격적이었던 게 있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래에 태어날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안 낳는다. 이렇게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아이가 성장해야 하는 건 못 참겠다’는 내용이었다”며 “그렇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게 저출생을 저절로 극복하는 길”이라고 했다.
정 원장은 아동의 권리 침해는 학대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동들은 놀거나 쉴 시간도 없이 공부만 해야 한다. 경쟁 압력 때문에 계속해서 달려야 하는 아이들이 행복할까, 행복을 침해받고 있는 게 아닐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우리 사회가 경쟁과 비교에서 멀어지는 것과 동시에 아동이 ‘권리의 주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게 아동 행복을 위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아동이 행복한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게 저희의 역할이다. 뾰족한 방법은 없지만 부모님의 역할과 관련해 여러 가지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며 “‘긍정양육 129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핵심은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시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하나의 인간, 작은 시민으로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아동의 참여권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도 밝혔다. 정 원장은 “아동이 당사자로서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환경이 좀 더 빨리 바뀌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해 이렇게 변화가 더디다고 본다”며 “우리 홈페이지에 ‘나 할 말 있어요’ 이런 코너도 있지만,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장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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