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 주현태 기자] 12일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은가어린이공원에서 만난 A씨는 “어린이공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싫지만 이런 분위기를 선동하는 담뱃가게도 문제”라며 표정을 찡그렸다. 아이 손을 잡고 있던 B씨도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는 서대문구에도 너무 화가 난다”며 “국회의원 출신이라고 해서 이성헌 구청장을 뽑았는데, 그러면 뭐 하나. 민생챙긴다는 거짓말에 속았다는 느낌”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들이 불평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린이공원 바로 옆에서 흡연하는 사람들 때문. 어린이공원을 이용하려면 간접흡연을 감수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만난 한 아이 엄마는 “최근 이 동네 어린이공원에서 흡연자인 택시기사와 아이 부모 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공원 바로 코앞에서 간이식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지 모르겠다”며 “택시기사들은 공원 안이 아니면 흡연이 가능한데 왜 시비를 거냐며 욕설전이 오갔다”고 설명했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사진=서대문구
이 제보자에 따르면 공원 주변에 어린이 물품을 파는 문방구가 아이러니하게도 담배를 팔고 있다. 특히 이 상점은 커피자판기를 운영하면서도 어린이공원 반경 1미터 내에 간이식 의자를 흡연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주민 신모씨는 “이같은 갈등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만 흡연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남자분들로, 아이와 둘이 있을 때는 싸움으로 번질까봐 금연해달라고 말도 못한다”며 “서대문구에 민원을 넣어도 그때뿐으로 포기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해 서대문구 홍보담당관은 언론팀 전체가 서대문구의회에 보고하러 가서 답변할 수가 없다며 팀이 돌아오면 전화를 주기로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이후 어린이공원을 관리하는 푸른도시과에 문의했지만, 해당 관계자는 “금연 단속은 서대문보건소의 일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연결된 서대문보건소 금연환경관리팀 관계자는 “팀장님이 자리에 없어, 나중에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한 학부모는 “어린이를 위한 문방구가 어린이 환경을 망쳐놓고 있다. 대놓고 간이의자를 제공하고, 커피·담배를 판매하는데 서대문구는 이조차도 제대로 잡지 못한다”며 “어린이공원 주변이 택시 주차장이 됐는데도 남의 일처럼 처리하는 서대문구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모 구청의 한 공무원은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개인 물건을 놓는 것은 명백한 법률 위반으로, 현장 계도·안내문 교부로 일단 경고한다”며 “반복적·상습적 위반을 한다면, 과태료 부과·적치물 강제 수거 등 행정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가 12일 오후 2시 해당 지역을 찾아가 본 결과, 어린이공원 주변에 택시 5대가 주차돼 있었다. 택시기사들도 어린이공원 주변에서 삼삼오오 모여 흡연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공원 내에는 어린이 2명과 어르신 10여명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이들은 흡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근 흡연권과 비흡연권을 두고 지자체들의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금역구역을 확대하고, 간접흡연을 막기 위한 조례를 만드는 등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다. 반면 이성헌 구청장이 이끌고 있는 서대문구는 탁상행정만 고집하고 있는 모양새다.
서초구 어린이공원에 주변 10m 이내는 금연구역이라는 안내표지판이 설치된 모습./사진제공=서초구
서초구는 어린이공원을 중심으로 반경 10m 이내 공공도로를 금연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어린이공원 둘레 금연 구역에서의 흡연행위에 대해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해야 한다. 어린이공원에 더해 그 주변까지로 금연구역을 확대한 것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다.
구는 계도기간에 어린이공원 주변에 홍보 현수막과 안내표지판, 금연 바닥 표지 등 시설물을 설치·점검하는 동시에 홍보·계도 활동을 벌였다.
단속과 함께 금연 실천을 돕는 서비스도 한다. 전국 최초로 흡연 위반확인서에 ‘서초 금연 교육 QR코드’를 활용, 적발된 흡연자가 ‘금연 교육 및 지원 서비스’를 즉시 신청토록 안내한다. 온라인 강좌 3시간 이수 시 과태료 50%, 금연 클리닉 등 금연 지원 서비스 6개월 과정을 이수하면 과태료 전액을 각각 감면한다.
전성수 구청장은 “앞으로도 간접흡연으로부터 미래세대 아이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등 주민 체감형 금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마포구의 경우에도 따로 조례가 마련된 내용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민원 외에도 수시로 공무원들을 투입해 ‘어린이공원’ 주변에 대한 시민의식을 바꾸고 있다. 또 ‘어린이들이 힘들어 한다’는 현수막을 마련해, 어린이들이 간접흡연피해가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무분별한 흡연에 못이긴 한 초등학생들이 금연을 호소하며 직접 손편지를 쓴 것과 관련해서도 마포구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흡연자들에게 시민의식을 바꾸는데 힘썼다.
마포구 관계자는 “법적으로 제한된 곳에서 흡연하는 분들을 잡아낼 수는 없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시민인식에 호소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며 “위반은 아니지만 흡연자들이 행동이 타인한테 피해를 준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현재는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주현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gun131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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