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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지하 24만채… “사람 죽었던 집에 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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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이 반지하 주택에 방문해 기자들에게 매입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성아 기자

매해 여름이면 찾아오는 ‘극한 호우’로 공포에 떠는 이들이 있다. 2년 전 서울 곳곳이 물에 잠기면서 발생한 반지하 주택의 인명 사고가 다시 악몽처럼 떠오르고 있다. 서울시와 산하 공기업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반지하 매입을 통한 소멸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해 왔지만 수해 예방을 위한 인프라 정비 등 보다 근본 대책이 요구된다.

김헌동 SH공사 사장은 12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빌라 밀집지역에 위치한 반지하 주택들을 방문했다. SH공사가 예산을 들여 매입한 반지하 주택이다. 이곳은 2022년 여름 집중호우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반지하 주택에서 도보 4분 거리에 있었다.

SH공사는 2022년 8월 해당 사고가 발생한 이후 침수 우려 지역을 중심으로 반지하 주택을 매입했다. 지난 6월까지 2718가구를 사들였다. 특히 사업의 걸림돌이던 불법건축물 등의 매입 불가 기준을 바꿔 매입 대상을 확대했다. 반지하 가구만 단독 매입할 수 없는 국토교통부 기준도 변경을 건의해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김 사장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30여년 전 신혼 때 반지하에 살았는데 수해의 위험이 얼마나 큰지 경험을 통해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곰팡이가 핀 집안을 보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김 사장은 “2022년 사고를 보면서 정부와 SH공사가 책임지고 반지하를 없애 비극을 멈춰야겠다고 결심했다”며 “하지만 무한정 매입할 수 없는 제도의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지하 매입해 주민 커뮤니티시설 활용

사진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반지하 주택이 '동네 수방 거점시설'로 변모한 모습. /사진=김성아 기자

SH공사는 올해 반지하 주택 매입 목표에 대해 커뮤니티로 활용하는 50가구를 포함 2315가구라고 밝혔다. 지난 6월 말까지 지하층 284가구, 지상층 354가구 등 목표의 28%에 해당하는 638가구를 매입했다.

이렇게 SH공사가 매입한 반지하 주택은 자치구와 연계해 지역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 돌봄 시설 등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관악구의 반지하 주택은 침수 피해가 잦아 양수기 배수펌프 등 기기를 보관하는 ‘동네 수방 거점시설’로 활용되고 있었다. 침수 피해 발생 시 임시 대피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

김 사장은 “정부가 실질적인 주거대책에 더 집중해줬으면 한다”며 “중상층 이상이 거주하는 1기 신도시 특별법보다 인명이 달린 지역의 주거환경 개선이 더 시급하다”며 정부 지원을 수차례 강조했다.

반지하 매입 실적, 실제 가구 수 대비 턱없이 부족

사진은 김헌동 SH공사 사장이 반지하 매입 과정에 필요한 예산의 국비 지원을 주장하는 모습. /사진=김성아 기자

하지만 반지하 소멸까지의 과정은 험난해 보인다. 올여름 기후변화로 잦은 폭우가 예상되는 가운데 침수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장·단기 대책의 일관성이 요구된다.

SH공사의 반지하 주택 매입 실적은 서울시내 반지하 가구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 서울시가 2022~2023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반지하 가구 수는 23만7619가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연희 의원(더불어민주당·충북 청주흥덕) 조사 결과 SH공사뿐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제공한 임대주택 이주 가구를 합하면 3290가구로 전체 반지하 가구의 1.4%에 불과했다.

반지하 매입의 최대 문제는 재원의 한계다. SH공사는 2022년부터 반지하 주택 매입 비용으로 8110억6400만원을 투입했다. 가구당 평균 2억9800만원이다.

국고 지원 단가인 가구당 1억8200만원을 초과하는 1억1600만원에 대해 SH공사가 서울시와 절반씩 부담했다. 1가구를 사들일 때마다 SH공사의 재정 부담은 5800만원씩 가중된다. 이에 지난 4일 SH공사는 반지하 주택 매입에 재정 부담이 크다며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사장은 “국토교통부와 LH가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건물 소유주가 건물을 매각할 동기 부여도 취약하다. 감정평가 금액이 낮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선택지가 적은 주거 약자의 반지하 임대 수요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다 보니 헐값에 팔겠다고 나서는 소유주가 많이 않다.

매입 정책보다 안전 확보와 주거환경 개선 나서야

사진은 관리되지 않은 빗물받이(왼쪽)와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은 반지하 주택(오른쪽)의 모습. /사진=김성아 기자

일각에서는 반지하 주택 매입 정책도 중요하지만 안전 확보와 주거환경 개선이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지하 소멸은 장기 비전으로 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안전을 등한시해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기자가 신림동 일대를 둘러본 결과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은 반지하 주택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시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침수 위험이 큰 가구 10곳 가운데 4곳꼴로 물막이판 설치가 되어있지 않았다.

빗물을 하수구로 보내는 빗물받이의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빗물받이에서 올라오는 냄새와 벌레를 막기 위해 주민들은 대부분의 빗물받이를 나무판 등으로 막아놨다. 그렇지 않은 곳은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쓰레기와 토사, 담배꽁초 등으로 막힌 빗물받이는 배수 기능에 문제가 생겨 침수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 된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한 달에 두 번씩 빗물받이를 청소하고 있지만 너무 많아 관리에 한계가 있다”며 “물막이판 같은 경우 주택 소유자가 유지·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림동에서 30년 넘게 거주해온 70대 최씨는 “사고가 났던 집에서 다른 사람이 다시 살고 있다”며 “변한 것이 없다. 물막이판 설치도 안 된 집이 많아 비오는 날은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반지하 소멸 정책의 실행에 한계가 있는 만큼 침수 피해 방지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승현 도시와 경제 대표는 “재산권 등 여러 방해 요소로 반지하 소멸까지 가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배수 체계 정비와 물막이판 설치 등 침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에 집중해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되는 조치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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