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학사 양대산맥이던 롯데케미칼, 5년 만에 꼴찌로 전락
롯데그룹, 호황기에 적합한 ‘정통 화학맨’ 불황기에도 고수
경쟁사 사업 다각화할 때 석유화학 ‘한 우물’ 전략에 적자 지속
전략통 이훈기 투입하며 이전 인사실책 바로잡기
올해부터 롯데케미칼을 이끄는 이훈기 대표의 어깨가 무겁다. 불과 5년 전 국내 화학사의 양대산맥이었던 롯데케미칼이 현재는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간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1등에서 꼴찌로 추락하기까지 ‘잃어버린 5년’
롯데케미칼은 연간 영업이익 기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LG화학과 1위를 치열하게 다투며 ‘화학맞수’로 거론됐다. 특히 2016년, 2017년에는 롯데케미칼이 현재 업계 1위인 LG화학을 누르고 왕좌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김교현 전 부회장(당시 사장)이 롯데케미칼 대표이사로 취임한 첫해인 2017년 석유화학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으나 그 뒤로 날개가 꺾였다.
2018년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2017년 3조원에 육박하던 영업이익이 김 전 부회장이 롯데그룹 화학 계열사를 총괄하게 된 2019년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2020년 영업이익은 3569억원을 기록하며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했다. 당시 적수였던 LG화학은 1조8054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선두자리를 확고히 했다.
코로나 특수로 역대급 석유화학업계가 호황을 누리던 2021년 LG화학이 5조원대, 금호석유화학이 2조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릴 때, 롯데케미칼도 흑자를 내긴 했다. 하지만 영업이익 규모는 1조원대에 그쳤다.
롯데케미칼은 급기야 2022년, 2023년에는 각각 7626억원, 347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연달아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국내 석유화학 ‘빅4’ 중 유일한 적자 기업이다.
그룹의 늑장인사가 꺾은 롯데케미칼 날개
김교현 전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전임자와 닮아 있다. 석유화학 호황기였다면 허수영 전 롯데그룹 화학 BU장(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최고경영자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기가 그렇지 못했다. 업황이 꺾이는 것은 물론 업종 자체가 사양길을 앞둔 시기에 롯데그룹은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정통 화학맨’을 수장에 앉혔다. 그룹 컨트롤타워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원료와 제품간 마진에 의존하는 장치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가는 ‘위기대응 실패’였다.
배터리, 바이오 분산투자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며 석유화학 업황이 꺾일 시기를 대비한 LG화학과 달리 석유화학에 올인한 롯데케미칼은 위기에 직면했다.
김 전 부회장은 업계 불황에도 지속해서 석유화학 사업에 막대한 금액을 투입했다. 3~4년이면 다시 피크업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앞세운 결과였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화학기업과 합작설립한 자회사 ‘롯데베르살리스엘라스토머’가 있다. 롯데베르살리스엘라스토머는 합성고무 생산을 통해 프리미엄 제품 시장을 선점할 계획이었으나 열 번의 넘는 유상증자에도 설립 이래로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전 부회장은 뒤늦게 ‘한 우물 전략’에서 벗어나 2030년을 목표로 친환경 기업으로서의 도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수소·배터리·재활용 등 친환경 신사업을 육성하며 범용 석유화학 사업 매출 비중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역대급 자금을 투자해 동박회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난 1년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실적을 내며 업계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조급함에 다소 과한 금액을 베팅했다는 평이 나온다.
실패한 용병술을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 했지만 그룹 컨트롤타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LG화학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대규모 적자까지 낸 2022년 연말 인사는 롯데케미칼의 수장 교체를 통해 경영스타일을 전환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김 전 부회장의 연임을 택했고, 적자는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이훈기 대표의 꼴찌 탈출 도전…관건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늑장인사’의 대가는 뼈아팠다. 전임자 시절 경영악화에 따른 재무부담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는커녕 당장 재무를 안정시켜 경영정상화부터 이루는 게 시급해졌다.
올해부터 롯데케미칼을 이끌게 된 이훈기 대표는 롯데지주에서 경영혁신실장을 지낸 롯데그룹의 대표적인 전략‧기획통으로 꼽힌다. 과거 롯데그룹 인수하거나 새로 설립한 기업들을 안정화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다. 특히 공격적인 사업 확장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경영 스타일로 이전의 경영으로 재무부담이 커진 롯데케미칼을 안정화시킬 적임자로 평가된다.
전임자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경영스타일의 이훈기 사장을 롯데케미칼 대표로 임명하고 재정비를 맡긴 것은 그룹 차원에서 이전의 인사 실책을 사실상 인정하는 의미로 풀이된다. 같은 맥락에서 그룹 컨트롤타워가 일찌감치 위기를 감지하고 좀 더 빨리 움직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훈기 대표는 최근 포트폴리오 전환을 통한 ‘2030년 기업가치 50조원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기초화학 부문의 사업 포트폴리오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줄이고 배터리 소재·수소에너지 등 신사업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챙겨야 할 것은 재무 건전성 제고다. 비효율 자산 매각, 사업 리스크 관리를 위한 투자유치, 전략적 관점의 사업 철수 계획을 통한 사업구조 개편 작업을 마무리해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
적자폭을 줄이고 흑자로 되돌려 시장의 믿음을 회복하는 것도 시급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에 따르면 올해 롯데케미칼은 712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3477억원 적자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실적이다.
여러모로 이훈기 대표의 어깨에 얹힌 짐이 무거워 보인다. 사태가 크게 악화된 뒤에야 이뤄진 소방수 투입이 아쉽지만, ‘잃어버린 5년’에 햇수를 더하지 않고 ‘반등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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