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의 오리엔탈, 후쿠오카의 더 루이간스(The Ligans) 등 로컬리티를 잘 살리기로 정평이 나 있는 호텔 그룹 플랜·도·시(Plan·Do·See)가 기획한 아오야마 그랜드 호텔은 출발부터 ‘아오야마’ 라이프스타일을 모티프로 삼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4층 벨코모(Belcomo)라는 레스토랑 & 바에서 호텔과 첫 만남이 시작된다. 캘리포니아 모던 미드센추리 스타일의 이 캐주얼 레스토랑에는 낮과 밤을 화려하게 수놓는 패셔너블한 도쿄 젊은이들로 들끓는다. 벨코모는 1970~1990년대에 이 자리에 있었던, 아오야마의 상징적인 쇼핑센터 벨 커먼스(Bell Commons)의 애칭에서 가져온 이름. 벨 커먼스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아오야마 멋쟁이들이 만나고 엇갈리던 추억의 장소였다.
호텔 디자인은 하이엔드 인테리어를 선도해 온 아오야마 노무라 디자인(A.N.D)이 맡았는데, 임스의 유닛 캐비닛과 의자들, 도형을 강조한 그래픽 포스터와 레코드 커버로 벨 커먼스 시대를 소환한다. 객실은 42개로 이상적인 디자인 호텔의 규모를 지녔다. 기타아오야마 뷰를 끌어들이도록 전면이 유리로 된 타입부터 블록 유리를 통과한 은은한 중정 쪽의 호젓한 방, 신주쿠를 조망할 수 있는 객실까지 다양하다. 멀리 도쿄 타워가 보이는 1804호에 짐을 풀었다. 레트로 컬러의 진수인 딥 그린으로 카펫을 깔았고, 트로피컬 패턴의 소파, 1830년부터 이어져온 교토의 이와타가 만들어낸 대나무 베드 프레임, 아르네 야콥센의 벨뷰 램프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곳이 빈티지 감성을 자극하는 건 1970년대 아오야마에 살던 외국인 아파트먼트라는 디자인 컨셉트에서 기인한다. 호텔임에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록 만든 현관, 워크 인 클로짓과 욕실의 긴밀한 연결, 침실과 거실이 슬라이딩 도어로 구분되고 이어지도록 만든 시스템은 확실히 아파트먼트에 가까운 구조다. 게다가 알플렉스(Arflex)의 실용적인 가구들, 이를테면 미니바와 그릇장을 결합한 세로형 캐비닛은 우리 집 거실을 떠올릴 정도로 탐나는 아이템이다.
아오야마 그랜드 호텔의 가장 큰 매력은 미니바의 모든 음료와 스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맥주와 와인, 위스키는 물론이고 함께 곁들일 시부야 명물인 하치니 센베이와 견과류까지 갖춰져 있다. 밤이면 친구를 초대해 조촐한 개더링을 만들거나 혼자 도쿄의 밤을 기분 좋은 취기로 만끽할 수도 있다. 머무는 동안 편안하고 정겨운 기분을 느꼈던 이유를 떠올려보니 상주 한국인 직원과의 친밀한 만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방에 걸린 이세이 오타니(Issei Otani)의 작품을 설명해 줬고, 이 지역 최고의 소바집을 예약해 줬다. 아오야마를 애호하는 이들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을 것 같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