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리 깔린다.
“물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마치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처럼 선택받았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두려움 대신 오만함이 머리에 맴돌았지만 내 곁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내 차례가 됐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등장한 목소리의 여운은 오래도록 깊게 이어진다. 단 몇 줄의 독백은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덮친 황폐한 세상의 한 복판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임영웅이 주연한 영화 ‘인 악토버'(감독 권오준·제작 물고기뮤직)가 관객에 건네는 의미심장한 초대장이다.
영화의 배경은 물이 사리지고, 전염병까지 확산하면서 종말의 위기가 닥친 세상.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덮쳐 사람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영웅은 전염되지 않고 살아남아 자신만의 안전가옥을 만들고, 유일한 친구인 반려견 시월이와 살아가고 있다.
마실 물도 없고, 마음껏 숨 조차 쉬기 어려운 세상에서 영웅의 유일한 희망은 곁을 지키는 시월이다. 하지만 그런 시월이마저 떠나고, 더 이상 견디기 버거워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 의문의 인물 희연(안은진)과 마주한다.
‘인 악토버’는 임영웅이 지난 5월 발표한 노래 ‘온기’의 뮤직비디오를 겸해 제작된 단편영화다. 이야기를 응축한 뮤직비디오를 먼저 선보였고, 편집과 시각특수효과 등 미술 작업을 거쳐 러닝타임 31분의 단편영화로 완성해 지난 6일 쿠팡플레이와 티빙을 통해 공개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 희망을 찾는 압축적인 메시지
‘인 악토버’는 만만치 않은 영화다. 작품의 주연과 영화의 기획까지 도맡은 임영웅이 이번 작업에 얼마나 의욕을 갖고 임했는지 영화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보통의 단편영화가 제작 여건이나 스태프 규모 등을 고려해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장르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에 야심차게 도전한 것은 시작일 뿐이다. 살아 숨쉬는 생명체를 만날 수 없는 황폐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비극을 딛고 다시 희망을 찾아 나서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함축해 담은 시도 역시 돋보인다. 이야기 자체는 개성이 뚜렷한 장르물로 풀어내면서도 그 안에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함께 나아가자는 단단한 목소리를 담는 시도도 놓치지 않았다.
영웅은 시월이가 사라지자, 삶의 의지를 잃는다.
그 비극의 한쪽에선 물을 찾아 거친 여정에 나선 희연(안은진) 부녀가 있다. 물을 찾으면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험난한 여정 속에 희연의 아빠 준호(현봉식)마저 병에 전염돼 눈을 감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영웅과 희연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먼저 떠난 사람들은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길지 않은 대화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깊이 이해한 두 사람의 만남에 시간은 오래 허락되지 않는다. 결국 다시 혼자 남은 영웅은 희연의 반려견 막스와 함께, 그녀가 남긴 지도를 나침반 삼아 물을 찾아 나선다.
‘인 악토버’는 임영웅의 노래 ‘온기’의 뮤직비디오로도 기획된 만큼 영화 자체의 이야기가 노래와 깊게 연결돼 있다.
‘온기’는 외롭고 힘들어도 ‘어른’이라는 단어 한마디가 주는 책임감 탓에 마음껏 속내를 터 놓을 수 없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곡이다. 차마 말하지 못할 아픔과 고통의 순간에 놓인 이들의 곁에 언제나 함께 하겠다는 임영웅의 다짐을 담은 곡이기도 하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배경음악을 최대한 자제하고, 황폐한 세상의 황량한 기운으로 화면을 꽉 채운다. 하지만 극 말미 ‘온기’가 흘러나오는 순간, 꾹꾹 눌렀던 감정은 마침내 폭발한다. 지금 눈 앞에 비극만 가득하더라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고 말하면서 따스한 손길을 내민다.
‘인 악토버’의 미덕은 더 있다. 단편영화로는 드물게 종말 그 이후의 세상을 실감나는 시각효과로 표현한 부분이다. 최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부터 ‘황야’ 등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가 인기 장르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인 악토버’는 31분 분량의 단편으로도 그 세계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응축된 서사까지 완성했다.
주인공 영웅을 연기한 ‘배우 임영웅’에 대한 평가도 빼놓을 순 없다.
임영웅의 목소리는 노래를 부를 때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사실은 이번 작품에서 증명됐다. 영화의 오프닝을 여는 임영웅의 독백은 여러 설명도 필요 없이 관객을 ‘인 악토버’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물론 감정을 표현하는 표정 연기 등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영화의 흐름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인 악토버’는 시작일 뿐, 또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임영웅의 모습을 기대케 한다.
영화의 연출은 권오준 감독이 맡았다. 방탄소년단과 다이나믹 듀오, 비비 등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CF 감독으로도 활동하는 감독으로 ‘인 악토버’의 시나리오까지 직접 썼다.
감독 : 권오준 / 출연: 임영웅, 안은진, 현봉식 / 제작: 물고기뮤직 / 장르: SF / 공개: 7월6일 / 관람등급: 전체 관람가 / 러닝타임: 31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
로 나눠 공개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