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율은 근 2년 동안 검사로 살았다. 지난해 방영한 ENA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에 이어 지난 6일 종영한 SBS ‘커넥션’과 현재 방영 중인 JTBC ‘놀아주는 여자’까지 세 작품 연달아 검사 캐릭터를 연기해서다. 변호사 역을 맡은 SBS ‘귓속말’까지 더하면 ‘사짜’ 직업만 네 번째다. 9일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권율은 “내게 그런 이미지가 있나 궁금하더라”며 웃었다.
같은 직업일 뿐 그가 최근 세 작품에서 연기한 캐릭터들은 천차만별이다. 특히나 ‘커넥션’ 속 박태진은 악역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물이다. 마약 사업부터 불륜에 자신의 성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비정한 소시오패스 면까지 두루 갖췄다. 필모그래피에 악역이 쌓이는 걸 경계하던 권율도 다채로운 악행에 흥미가 생겼단다. 권율은 “해낼 수 있겠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처음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 감독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저는 더 이상 악역을 안 하려 한다’고요. 비슷한 이미지로 소모되다 보니 제 캐릭터가 고착될까 두려웠거든요. 하지만 (박)태진이를 통해 여러 감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악행이 워낙 다양해야죠. 하하. 걱정될지언정 거부할 수 없는 캐릭터와 대본에 이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고 끝에 권율은 감독에게 자신감 넘치는 답을 내놨다. “지금까지 악역으로 보여준 모습과 다르면서도 노하우를 응축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는 말에 감독이 반색한 건 당연지사. 그는 극 내내 박태진으로서 매 상황을 좌지우지한다. 박태진이 오윤진(전미도)에 분노를 토해내며 위협하는 10회가 압권이다. 권율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장면”이라면서 “권율의 새 얼굴을 봤다는 평이 가장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권율은 박태진의 본질을 “능력이 아닌 환경에 관한 자격지심”이라고 짚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등급에 번번이 좌절하며 불만이 쌓였다는 게 권율의 해석이다. 때문에 박태진은 우정을 내세운 ‘이너서클’의 테두리 내에서도 철저히 계급화한 이해관계를 드러낸다. 권율은 “사이코패스보다 소시오패스 면모가 도드라지는” 박태진의 면을 그려내기 위해 극에서 친구로 호흡한 동료 배우 김경남, 차엽과 매번 머리를 맞대고 연기 합을 맞췄다. 권율의 집은 이들의 연기 아지트였다. 그가 “어느 작품보다도 한 팀으로 호흡했다”고 느낀 이유다.
진실을 알고 무너지다가도(‘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냉정한 얼굴로 악행을 자행하고(‘커넥션’), 다정한 원칙주의자(‘놀아주는 여자’)로도 생동한 권율은 차별점 있는 연기를 늘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커넥션’ 박태진은 오리무중, ‘놀아주는 여자’ 장현우는 외유내강”이라며 “그보다 전작인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차영운은 아픈 손가락”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이미지 전환을 위해 여러 장르를 오가던 권율은 “연기자로서 다양하게 쓰이고 싶다는 욕심이 크다”고 했다. 11년 동안 몸담던 소속사를 옮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권율은 “그간 해온 캐릭터와 작품이 날 증명하고 동시에 내게 확신을 준다”면서 “숨 쉴 공간을 내어주는 캐릭터라면 과감하게 뛰어들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대본이나 시놉시스에 적힌 것 이상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 있어요. 주어진 단어와 문장 안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연결고리를 이어가다 보면 새로운 뭔가가 나오거든요. 그런 캐릭터만 보면 도전욕이 샘솟아요. 저는 늘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연기자가 되고 싶거든요. 그러다 보면 대중의 눈에 더 잘 띄리라 믿습니다. 지난 몇 년간 예능에서 활약했으니, 올해에는 연기자 권율의 새로운 면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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