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나스닥지수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며 질주하는 것과 달리 코스닥지수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하지만 최근 20년 동안 지수 구성 종목의 시가총액 증가율만 따져보면 코스닥지수가 오히려 나스닥지수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쪼개기 상장, 뻥튀기 상장 등이 코스닥지수 상승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지수는 지난 9일 860.42로 장을 마감했다. 14거래일 만에 860선을 되찾았으나, 올해 초 시가(866.08)를 밑돌고 있다. 지난 3월 기록한 연고점(922.57) 대비 62.15포인트(6.7%) 낮은 수준이다. 반면에 나스닥지수는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각) 1만8403.74로 장을 마감하며 역대 최고가를 다시 한번 넘어섰다. 나스닥지수는 올해 들어 3392.39포인트(22.6%) 상승했다.
시계열을 넓혀봐도 나스닥지수의 상승 폭이 두드러진다. 나스닥지수는 2004년 7월 8일 1935.32 대비 현재 9.5배 뛰었다. 코스닥지수는 2004년 7월 9일 370.14에서 현재까지 2.3배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같은 기간 지수 구성 종목의 시가총액 증가율만 놓고 보면 코스닥지수가 앞선다. 코스닥지수 시가총액은 29조6000억원에서 419조원까지 14.2배 증가했다. 나스닥지수는 2조9240만달러에서 29조7080만달러로 10.2배 늘었다.
코스닥지수와 나스닥지수 모두 시가총액 가중 방식으로 지수를 산정한다. 그런데도 나스닥지수가 늘어난 시가총액에 비례해 지수가 상승한 것과 달리 코스닥지수가 시가총액과 괴리가 큰 이유는 주식 수 때문이다.
코스닥시장 상장 주식 수는 2004년 7월 119억주에서 현재 547억주로 4.6배가량 늘었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이 늘어나긴 했지만, 같은 기간 주식 수도 늘어 각 주식의 가치가 희석됐다는 의미다. 이와 달리 나스닥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경우 2004년 108억8000만주에 달했던 유통 주식 수가 소각을 거치면서 74억3100만주로 31.7%(34억4900만주) 줄었다. 애플 역시 최근 5년 동안 유통 주식 수가 9%(15억3000만주)가량 감소했다.
배경은 여러 가지다. 먼저 상장 과정에서 고평가 문제가 있다. 벤처기업 투자자들은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통로로 기업공개(IPO)를 주로 활용하고 있다. 원활한 투자금 회수를 위해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아야 하고, 이른바 ‘뻥튀기 상장’과 같은 폐해가 나타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IPO로 상장 주식 수가 늘어나는데 이후 주가는 공모가를 밑도는 일이 반복된다. 코스닥지수는 신규 종목이 들어오면서 시가총액 자체는 증가하지만, 주식의 평균 가치는 떨어지는 문제를 떠안아야 한다.
모자(母子) 회사 동시 상장 문제가 코스닥지수는 물론 코스피지수의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이 많다. 모기업의 핵심 사업부를 별도 회사로 만든 뒤, 이 회사를 주식시장에 다시 상장하면 상장 주식 수는 늘지만 본질적 기업가치는 그대로인 만큼 지수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밖에 ▲미국 기업이 주주환원을 위해 자사주 매입·소각에 적극적인 것과 달리 국내 기업은 소극적인 점 ▲국내 기업이 자금 조달을 위해 유상증자를 통한 신주 발행이 많은 점 ▲국내 증시에 상장 대비 퇴출이 제한적인 점 등이 주식 수 증가에 따른 지수 상승을 가로막는 요인들로 꼽힌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뻥튀기 상장이나 쪼개기 상장이 반복되면 주식시장이 건전해질 수가 없고, 지수 상승도 불가능하다“며 “기업 밸류업(가치상승)을 위해 거버넌스(Governance)가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인구 문제가 미국 시장과 한국 시장의 흐름을 엇갈리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증시에 유입되는 연금 자산이 미국은 늘어나는 반면, 한국은 앞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리서치 알음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는 2009년부터 ‘401K’라는 퇴직연금에 의무 가입한다. 보통 근로자 월급의 10%가량을 401K로 납입한다. 이 돈의 30~40% 수준이 주식형 펀드에 투자된다. 대부분 미국 시장으로 들어간다. 미국 인구가 지속해서 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을 뒷받침할 재원도 커지는 셈이다.
반면에 외국인을 제외한 국내 인구는 2020년부터 감소세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줄고 수급자는 늘어나는 상황에서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연금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최성환 리서치알음 대표는 “경제활동 인구 감소로 국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줄고 있어 안전판이 위협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개인 투자자가 국내 주식시장을 떠나 해외 주식 투자를 늘리는 상황에서 우량 기업의 이탈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투자자 사이에서 ‘국내 주식시장 탈출은 지능순’과 같은 자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 입장에서도 해외 증시를 찾아 떠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맞물려 세제 지원뿐만 아니라 시장 건전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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