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이하 ‘디폴트옵션’)가 시행 1년을 앞둔 가운데 가입자 적립금 89.6%가 ‘원금보장형’ 상품에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디폴트옵션이 지정된 가입자 적립금 총액 25조6000억원 중 23조원 수준이다. ‘위험을 일부 감수하고 고수익을 통해 자산 증식과 노후 대비를 유도한다’는 제도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정부가 발표한 역대 분기별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별 비교공시’를 분석한 결과, 디폴트옵션 상품 가입자 적립금 가운데 예금과 같은 원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한 비율은 작년 1분기 84.5%에서 올해 1분기 89.6%로 5.1%포인트 증가했다. 가입자가 일부 손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주식·채권을 편입한 펀드 등 ‘실적배당형(원금 비보장형)’ 상품을 선택한 적립금 비율은 15.5%에서 10.4%로 감소했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가입자의 적립금 총액은 최근(2024년 1분기말) 기준 25조6461억원으로 직전(2023년 4분기말) 적립금 12조5520억원에서 104.3% 증가했다. 실적배당형 상품 적립금이 1조2641억원에서 2조6771억원으로 111.8% 늘었고, 원금보장형 상품 적립금이 11조2879억원에서 22조9689억원으로 103.5% 불어났다.
유형을 가리지 않고 적립금 액수가 급증했지만, 실적배당형 상품 적립금 비율은 후퇴하고 있다. 관련 통계를 처음 집계한 2023년 1분기 기준 실적배당형 상품 적립금 비율은 468억원으로 총액(3012억원)의 15.5%였다. 2024년 1분기 비율은 10.4%로, 1년 만에 5.1%포인트가 줄었다.
원금보장형 상품 적립금 규모는 2023년 상반기까지 실적배당형 상품의 5배 수준이었는데 하반기 이후 실적배당형 상품의 8배 이상으로 차이가 커졌다.
디폴트옵션 지정 여부를 떠나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에선 실적배당형 상품 비율이 늘고 있다. 2023년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382조4000억원 중 실적배당형 상품 적립금은 12.8%(49조1000억원)를 차지했다. 실적배당형 적립금 비율이 2022년말(11.3%)보다 1.5%포인트 증가했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사전지정운용제도에 대해 “투자 위험도에 따라 상품군을 나눠 놓고 추가로 선택을 요구하는 형태로 도입돼 (금융투자에) 관심이 적거나 번거로워하는 가입자들이 안전자산을 선호하고 있다”며 “금융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적절한 위험 수준으로 수익을 최대한 낼 수 있게 만든 포트폴리오를 자동 선택되게 하는 디폴트옵션 제도의 취지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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