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만족도는 큰 부분 배우의 연기, 그리고 그를 잘 어우르는 연출의 힘에서 온다.
관객과 시청자를 제1선에서 맞이하는 배우, 작품의 ‘우편배달부’ 역할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제작진은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나 주연배우가 누구인가는 대중을 작품 앞으로 부르는 흥행의 제1 요소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그 관심도가 지속되고 만족도를 높게 하려면 조·단역의 연기까지 중요해진다.
그중에서도 회차가 길고 조역과 단역의 등장이 많은 드라마에서 조역과 단역의 역할과 기능은 커진다. 때문에, 주연 캐스팅에만 공을 들이고 손을 놓아버린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버림받기에 십상이다.
요즘 잘됐다, 잘 만들었다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대사 없는 단역까지도 캐스팅이 기막히다.
영화 ‘하이재킹’(감독 김성한, 주연 하정우·여진구·채수빈·성동일)에서 보듯, 제작진이 배우 오디션에 시간과 애정을 쏟으면 작품 매무새에서 표가 난다. 카메라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모든 배우의 연기에 진심이 깃들어있고 성심으로 하나 된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에게 크나큰 감동을 안긴다.
극장에서 ‘하이재킹’을 통해 느꼈던 ‘와, 진짜 캐스팅 미쳤다!’라는 감탄을 안방극장에서 만났다. JTBC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연출 이형민·최선민, 극본 박지하, 제작 삼화네트웍스·SLL)에서다.
사실 배우 이정은이 이번엔 또 어떤 연기를 보여 주려나 싶어 보기 시작한 드라마였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나문희-심은경 커플이 한 몸이 되어 보인 연기가 너무나 대단했기에, 설정 자체로서는 끌리지 않았다. 김혜자-한지민 듀오가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통해 큰 감동을 주었던 곳도 JTBC인데, 이 방송사는 ‘한 사람 두 몸’ 설정을 좋아하나 싶은 ‘예단’에 방영 시작부터 시청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정은 배우인데, 연기 감칠맛 나는 정은지인데 1인 2체의 ‘색다른 맛’을 확인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역시나 이정은 배우는 무엇을 기대해도 그 이상을 보여 주고 있고, 정은지 배우 역시 세상살이 설움을 이토록 털털하고 맛나게 표현할 여자 배우가 누가 있겠나 싶게 호연했다. 표현력 좋은 두 배우 사이에 서니 감정을 줄여 표현하는 최진혁의 연기가 더욱 빛난다.
웬걸, 더욱 놀란 건 조연들의 연기다. 윤병희·정영주·정석용이 세 주연의 주변에 달싹 붙어서 드라마를 안정화하는 것은 기본, 생활 연기가 이토록 탄력 있고 고소할 수가 없다. 배해선·최무인·김재록에 이른 퇴장이 아쉬운 최범호 배우까지 서한지방검찰청 환경직 시니어 인턴 4인방은 개성 넘치는 매력으로 극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서한지청 내 빌런 같으면서도 인간미 있고 약속은 꼭 지키는 차장검사 역의 배우 김광식, 계지웅 검사(최진혁 분)에게 나 혼자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탁천희 검사 역의 문예원, 차장검사의 심복으로 인턴 4인방에게는 엄하고 톱스타 공익 고원(백서후 분)에게는 관대한 우연 역의 김미란, 계지웅에게 도가빌 입주를 권유한 부동산중개인 도가평으로 등장하는 안상우의 연기는 너무 천연덕스러워서 언제 또 나오나 기다리게 한다.
그리고, 임순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낮의 이미진’(이정은 분) 곁의 세 사람도 주목해야 한다. 8화까지 공개된 시점에서, 심각한 범죄 스릴러물이 아니므로 끝내 연쇄살인범으로 예상되는 화공병원 명예원장 백철규 역의 정재성은 입 외에는 얼굴 근육을 정지시킨 듯한 연기로 드라마가 소란스럽고 뜨거워질 때쯤 서늘함을 발산한다. 임순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 인물로, 임순에 빙의된 시청자에게 두려움을 안긴다.
임순의 비밀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 고원 역의 백서후는 ‘안구정화’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게 맑고 밝게 임순을 지킨다. 최진혁이 주로 정은지와 설렘주의보를 발령한다면, 백서후는 ‘네가 겨우 한 살 많은 거잖아’라는 태도로 이정은에게 성큼성큼 다가서며 중년층 시청자를 ‘심쿵’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을 뺏긴 신스틸러 배우는 ‘화장법 개인방송’을 업으로 하는, 도가평의 딸이자 이미진의 절친 도가영 역의 배우 김아영이다. 연기 배포 큰 정은지와 붙어도, 베테랑 연기 달린 이정은과 호흡을 맞춰도 밀리지도 눌리지도 않고 신선한 케미스트리(화학 반응)를 과시한다.
김아영은 공으로 치면, 작고 귀여운데 탄성이 넘쳐서 어떠한 질감의 벽면이든 바닥에 던져도 통통 튀기고 계속 튀기는 ‘얌체공’이다. 이 배우에게도 튀겨보고 싶고, 저 배우와의 호흡도 궁금한데 도가빌 403호에 너무 갇혀 있다. 다음이, 내일이 궁금한 배우다.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미친 캐스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치매에 걸려서도, 계지웅의 엄마와 이미진(정은지 분)의 이모가 연관돼 있을 연쇄살인 사건을 놓지 못하는 권 형사 역의 정수교, 계지웅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주병덕 수사관(윤병희 분)의 정보원인 도박꾼 역의 최교식, 마약을 팔려는 건지 신종 데이트 수법인지 헷갈리게 하는 마약배달부 역의 김가희를 비롯해 가끔 등장하는 배우들마저도 연기력이 대단하다.
사실 특별출연이나 드물게 오가는 배역의 연기가 부자연스러워도 시청자는 ‘그럴 수 있지’ 크게 트집 잡지 않는다. 그러나, 비중 작은 배역의 배우마저도 연기가 좋을 땐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한껏 높아진다. 이형민 감독의 드라마에 대한 진심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를 보는 부가적 재미가 여기서 나온다. 어디 어디 역까지 좋은 배우들이 나오나 보자, 혼자 겨루기를 신청하고 벼르며 보는데 백전백패 ‘믿기지 않을 만큼’ 연기력 좋은 배우들이 계속 등장한다. 이게 가능해? 와, 진짜 미친 캐스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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