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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 BIFAN 개막작일 수밖에 없네, ‘러브 라이즈 블리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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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라이즈 블리딩 2
10일 개봉하는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우리에게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낯익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오른쪽)와 케이시 오브라이언이 주연을 맡은 퀴어 로맨스 범죄 드라마다./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성 소수자들의 격정적인 사랑을 유턴없이 직진으로 그린 퀴어 로맨스에 매 맞는 아내가 등장하는 막장 가족 드라마를 섞었다. 여기에 음습한 분위기의 범죄 누아르를 토핑으로 얹고 가부장적 질서에 용기있게 맞서는 가치 전복적인 시각을 심은 뒤, 판타지로 마무리한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작으로 10일 개봉하는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어울릴 것같지 않은 이질적인 요소들의 총집합물이다. 쉴 새없이 여러 장르를 오가는 탓에 극의 흐름이 수시로 덜컹거리고 따라가는데 숨이 가쁜 순간도 있지만, 강한 흡입력이 극 전체를 관통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미국 한 소도시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루'(크리스틴 스튜어트) 앞에 보디빌딩 챔피언을 꿈꾸며 떠돌이처럼 사는 ‘잭키'(케이시 오브라이언)가 나타난다. 동성애자인 ‘루’는 자유로운 영혼의 ‘잭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사격장을 운영하는 폭압적인 아버지(에드 해리스)와는 연을 끊다시피 했지만 ‘잭키’와 언니가 있어 그나마 행복하던 ‘루’는 형부(데이브 프랭코)에게 폭행당하고 입원한 언니의 모습에 크게 분노한다. 장인에게 빌붙어 사는 야비한 성격의 형부는 취직을 조건으로 ‘잭키’와 성관계를 가졌던 인물이다. 루가 슬퍼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잭키’는 루의 형부를 무참하게 살해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루’는 ‘잭키’와 함께 형부의 시신을 계곡에 유기하지만, 아버지의 의심어린 시선과 경찰의 수사망은 서서히 이들을 옥죄기 시작한다.

우선 주목해야 할 지점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하필이면 왜 1980년대 후반이냐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당시는 소련(현 러시아)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 국가들의 연이은 몰락으로 미국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때다. 힘에 의한 미국의 세계 지배를 일컫는 ‘팍스 아메리카나’가 통하던 시기로, 이 같은 사회 분위기는 ‘람보’의 실베스터 스탤론과 ‘코만도’의 아널드 슈워제네거처럼 가부장적 질서를 상징하는 근육질 마초 스타의 인기를 부채질했다.

남성 보디빌더 이상으로 더 많은 근육을 얻기 위해 스테로이드의 잦은 복용마저 서슴지 않는 ‘잭키’ 그리고 외도는 물론 가정 폭력까지 일삼는 형부와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강한 반감을 품은 ‘루’의 모습은 남성들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당시 미국 여성들의 양가적 감정을 대변한다. 남성 위주의 권위적인 사회에 반기를 들면서도, 내심 어떻게든 주류로 합류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상반된 심리 상태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레트로한 감성의 퀴어 로맨스로 출발한 뒤 중반부터는 으스스한 느낌의 범죄극으로 폭주하기 시작해, 결국은 보는 이들 대부분의 뒤통수를 때리는 기상천외한 마무리로 힘 있게 막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잭키’가 ‘루’의 형부를 죽이는 장면은 웬만한 공포영화 이상으로 섬뜩하고 잔인하며, ‘루’의 아버지를 연기하는 에드 해리스는 기괴한 헤어 스타일과 눈빛만으로도 주변을 얼어붙게 한다. 해리스는 ‘더 록’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등으로 국내 영화팬에게 낯익은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인데, 2007년작 ‘폭력의 역사’에 이어 또 한번 악역의 정수를 선보인다.

해리스 말고도 스튜어트와 오브라이언 등 출연진의 고른 호연은 연출자인 로즈 글래스 감독의 파격적인 시도에 훌륭하게 화답한다. 이들 중 홍보를 위해 BIFAN을 직접 찾은 안나 바리시니코프 역시 주목할 만하다. ‘루’를 흠모하는 ‘제니’ 역으로 출연해 많지 않은 분량에도 강한 존재감을 남기는데, 영화 ‘백야’로 1980년대 중반 한국 영화팬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던 영화배우이자 세계적인 무용가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딸이다. 눈매가 똑같아 성(姓)이 아니어도 부녀 관계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청소년 관람불가.

아시아투데이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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