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생명을 앗아간 시청역 교통사고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또 다시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7일 오후 2시 10분께 용산구 이촌동에서 70대인 A 씨가 몰던 택시가 앞서 있는 차량을 들이받으면서 차량 4대가 잇따라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로 인해 50대 남성과 80대 여성 2명이 경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뿐만이 아니다. 앞선 6일에는 70~80대로 추정되는 운전자 B 씨가 몰던 차량이 서울역 인근에서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 2명이 다쳤다. 지난 4일에는 70대 C 씨가 택시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로 돌진해 3명의 부상자를 낸 사고도 있었다.
문제는 운전자의 대처다. 용산에서 사고를 일으킨 A씨는 급발진을 주장하며 신고했다. C 씨는 역시 급발진을 주장했다. 하지만, C 씨의 경우 마약 간이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C 씨는 조사에서 평소 몸이 좋지 않아 처방 약을 먹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급발진’을 주장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월 유럽연합유엔경제위원회(UNECE) 주관 분과 회의에 참석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발표 자료가 눈길을 끌고 있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의 의견과 달리 브레이크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을 여러 차례 반복해 밟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료 공개는 고령 운전자를 향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의 운전자 대부분이 고령이라는 점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자신의 운전 미숙 혹은 페달 착각으로 벌어진 사고를 급발진을 핑계 삼아 책임을 회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며 고령 운전자들을 향한 혐오 상황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가 속출하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고령 운전자 사고를 막기 위한 일본의 조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령화율 세계 1위에 오른 일본은 이미 고령 운전자 증가를 고려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ACPE, Acceleration Control for Pedal Error)’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해당 장치를 지난 2012년부터 상용화하고 있으며 현재는 일본 내 판매되는 신차의 93% 이상 장착되고 있다. 또 일본 교통성은 해당 장치 장착을 의무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는 전·후방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장애물을 1~1.5미터(m) 앞둔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거나 시속 8킬로미터(㎞) 미만의 속도로 가속을 막는다.
일본의 경우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을 시작한 2012년의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 건수는 6000건이었으며 사상자 수는 무려 9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률이 높아짐에 따라 사고 건수와 사상자 수가 크게 줄기 시작했다. 장착률이 93.1%에 달한 2021년에는 사고 건수는 3164건으로 51% 감소했고 사상자 수 역시 51% 줄어든 4415명으로 집계됐다. 이와 같은 수치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의 사고 예방의 효과를 입증한 것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볼 때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의 효과는 이미 입증된 상태다”며 “고령 운전자 사고를 줄이는 것은 물론,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해당 장치의 의무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비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급발진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며 “사고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급발진을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는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고 전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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