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대신 ‘EB 발행 활용’ 선호하는 기업들
주주가치 제고보다 EB로 회사 이익 우선시해
증권가, 자사주 공시 규제 강화 회피한 ‘꼼수’ 지적
자사주 활용 EB, 향후 차익실현으로 주가 악영향 가능성
자사주를 활용한 기업들의 교환사채(EB) 발행이 이어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금융당국이 자사주 공시 규제 강화를 예고하자, 이를 피해 EB 발행을 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텔신라는 채무상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1328억 원 규모의 사모 EB 발행을 결정했다고 4일 공시했다.
EB는 발행 기업이 보유한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풋옵션)가 부여된 사채를 말한다. 통상 교환 대상은 발행 기업이 보유 중인 계열사 주식이나 발행사 자사주가 많다.
호텔신라의 이번 EB는 표면 및 만기이자율이 모두 0%로, 저금리로 자금 조달한다는 점에서 재무구조 개선 기대감을 키웠다.
앞서 유니드도 지난달 말 운영자금 조달 등을 위해 자사주 12만8671주를 교환 대상으로 154억 원 규모의 EB를 발행했다. 표면·만기 이자율은 호텔신라와 마찬가지로 0%다.
이 밖에도 에프엔에스테크, 알서포트, AP시스템, 디아이, 선익시스템 등이 지난달 자사주를 활용한 EB 발행을 결정했다. 이들 기업은 표면‧만기 이자가 모두 없거나, 만기 이자만 있어 금융비용 절감 면에서 긍정적이란 평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3분기 중 시행될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업은 자사주를 처분할 때 처분 목적과 주식 가치 희석 영향 등을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들의 권익을 높이기보다 자사주를 EB로 전환해 기업 이익에 활용한다면 이를 규제하겠다는 의도다.
이에 개정안 시행 전 자사주를 EB 발행에 활용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향후 EB로 전환된 자사주들이 시장에 풀리면 기업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크다. EB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교환한 자사주를 매도하면 시장에 유통 주식 수가 늘어나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
최근 기업들이 발행한 EB의 표면 이자가 전부 0%인 점은 주가 하락 가능성을 더욱 키운다. 이 경우 EB 투자자들이 수익을 보려면 EB를 주식으로 전환한 뒤 이를 매도해야만 해서다. ‘제로 이자’는 당장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인 데서는 이득이지만, 향후 수익을 위한 차익실현 가능성이 커 주가 상승의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이번 호텔신라가 EB 발행으로 교환할 자사주(213만5000주)는 전체 주식의 5.44%에 달한다. 에프엔에스테크는 전체 주식의 6.76% 규모다.
물론 대다수 기업이 자사주 교환가액에 프리미엄을 적용했다는 점은 잠재적 매도 물량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 예컨대 호텔신라의 교환가액은 기준주가의 15%를 할증 적용한 주당 6만2200원이다. 유니드의 교환가격은 기준주가의 15%를 할증 적용한 주당 11만9847원이다.
한편 기업들의 EB 발행은 증가 추세다. 최근 5년간 국내 증시에서 공시된 ‘교환사채권 발행결정’ 건수는 2019년(15건)→2020년(24건)→2021년(41건)→2022년(31건)→2023년(36건)으로 증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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