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시청역 인근에서 9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7명이 다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가해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는 상태다.
급발진 주장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전기 택시가 담벼락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운전자도 급발진을 주장했었다. 브레이크 페달을 수차례 밟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이처럼 급발진 주장 사고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차량 결함이 아닌 운전자 페달 오조작이었음을 증명하는 블랙박스 영상 자료가 처음 공개됐다.
지난 2월 유럽연합유엔경제위원회(UNECE) 주관 분과 회의에 참석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운전자의 주장과 달리 3초 동안 30미터(m)를 주행하는 동안 가속 페달을 여섯 차례나 반복해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는 주장을 반증하는 것이다.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 의무화하고 있는 ‘ACPE(Acceleration Control for Pedal Error)’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ACPE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뜻한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의 상용화를 처음 시작한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지난 2012년 노인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ACPE를 도입하게 됐고 현재 일본에 판매되는 차량 93%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가 장착되고 있다.
해당 장치의 효과는 컸다. 2012년부터 10년간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와 사상자 수가 절반 이하로 준 것이다. 이에 일본은 UNECE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 의무화에 대한 논의를 요청했다.
UNECE는 이를 받아들였다. 세계 각국에서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심각한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UNECE 내 ACPE 분과는 해당 사안에 대해 7차례 논의를 진행한 상태다.
UNECE는 내년 발효를 목표로 ACPE 관련 법안을 제정중이며 신차 안전도 평가를 진행하는 ‘유로 앤캡(EURO NCAP)’은 ‘제이 앤캡(J NCAP)’의 기준을 바탕으로 2026년부터 해당 기능의 안전도 평가 항목을 신설해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 역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도입에 시동을 걸었다. 이를 위해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지난 6월 21일 ‘페달 오조작 방지 기술 및 국제동향’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세미나는 지난 6월 19일부터 3일간 서울에서 자동차 국제기준제정기구(UN WP29) 산하 페달 오조작 전문가기술그룹 회의와 연계해 110여명의 국내·외 제작사 및 해외 전문가가 참석해 국제동향 및 기술을 발표하고 질의 응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또 토요타 자동차 소속 페달 오조작 기술 전문가인 타쿠야 카미나데(Takuya Kaminade)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의 사고 예방 효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지난해 12월부터 페달 오조작 방지 및 평가 기술 개발 기획 연구에 착수했으며 올해 8월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당시 세미나에서 권용복 한국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자동차 안전 관련 국민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 등 공공-민간 간의 협업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한 우수 안전기술이 선제적으로 도입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이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도입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이미 일본은 해당 기능을 도입한 지 10년 이상이 흘렀고 이에 따른 효과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며 “반면 한국은 점차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지속해서 페달 오조작 사고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장치 도입을 위한 준비가 미흡한 상태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에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가 탑재된 모델은 현대자동차가 최근 출시한 캐스퍼 일렉트릭이 유일하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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