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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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이자 프리랜스 통·번역가, 마케팅 디렉터. 통영에서 살며 얻은 영감으로 ‘수파클링 레모네이드(Sooparkling Lemonade)’라는 도자기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주변과 어우러지지 않는 이질감을 품으며 살아왔다. 정장을 입는 포멀한 파티에 혼자 반바지에 슬리브리스 티셔츠를 입고 온 사람처럼.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인생의 드레스 코드를 다른 사람들은 눈치껏 알아차리는 것 같은데, 내 눈에는 도저히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행동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어려서 해외생활도 오래 했으니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국제학부를 전공으로 택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자유의지가 충만한 20대 청춘을 모아놓은 대학교에서, 국제학부를 선택한 동기들 속에서 나는 스파이 같았다. 겉은 같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의문의 존재.
전공 수업 과제 발표를 하는 날, 모두 점잖은 옷을 입고 진지한 목소리로 본인이 생각하는 세계 평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내 차례가 왔다. 나름 열심히 준비해 평화에 대한 나만의 정의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체계를 열정을 담아 토로했는데, 돌아온 평은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았으며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거였다. 그날부터 인생을 바꾸는 질문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내가 속한 곳에 나를 맞추는 게 무슨 소용일까?’ 마음이 동하지 않는 곳(것)에 진심을 쏟아도 나는 그들과 너무 달랐다. 내가 없어질 정도로 나를 바꾸었는데도 그곳에 속하지 못한다면 내가 틀린 게 아니라 그곳이 틀린 게 아닐까? 그날 자신과 나눈 대화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화가 됐다.
내가 속한 곳에 나를 맞추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보다 내가 쏙 들어 맞는 곳을 찾아 나서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20여 년간 쌓아온 성실함, 학생이라는 신분과 사회 시스템을 한꺼번에 저버릴 순 없었기에 조금은 소심한 도전으로 시작했다. 전공 수업보다 교양 수업 비중을 늘리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필름 사진과 암실 수업이었다. 사진 과제로 동기들은 쉽게 접하는 사물, 룸메이트, 방, 부엌 등을 찍어왔다. 나는 거리로 나가 모르는 사람을 촬영하고, 대화가 이어져 그들의 집에 가고,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대학에 와 처음으로 교수에게 칭찬받았다. “쑤, 너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야.”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느낌은 좋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길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람을 찍는 것이 내겐 너무 자연스러웠다.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했다. 평소 쓸모없게 느껴졌던 친화력이 길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뮤지컬처럼 이야기를 풀어내는 내 입담이 처음 만난 사람의 마음을 열게 만들었다. 비로소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은 느낌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게 어울리는 곳을 내 힘으로 발견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그래서 한동안은 죽을 때까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고, 더 이상 길에서 낯선 사람을 촬영하는 것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삶의 마지막까지 내가 편히 있을 곳이라고 생각했던 자리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한순간에 사라지는 위기를 맞았다. 불안해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사진이 꼭 너의 전부일 필요는 없어.” 너무도 당연한 말이 당시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떻게 찾은 세계인데. 어떻게 숨 쉬게 된 나의 자아인데, 그것이 내 전부가 아니어도 된다니. 나는 아직도 20여 년 동안 억지로 학습한 가치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평생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한 말에 여전히 세뇌돼 있었다.
‘과연 평생 한 가지 직업만 갖는다는 것을 감수할 만큼 안정성이 내게 그렇게도 중요한 가치일까?’ 다시 한 번 자문했다. 이후로 나는 꾸준히 관심이 가는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얼마 전엔 통영의 구옥을 셀프 리모델링해 신혼집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매일 보는 따뜻한 햇살, 바다의 짠 내음과 알록달록한 동네의 영감을 바탕으로 한 번도 배워본 적 없고 사진과도 관련 없는 세라믹 브랜드를 만들어 집에서 도자기 작업을 하고 있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태평양 항해, 브랜드 마케터, 통·번역가, 세라믹 브랜드 오너. 숙명 같지만 내게 전혀 맞지 않았던 일을 용기 있게 떠난 결과 내게 어울리는 세계를 만났다. 전부 다른 세상 같지만 분명 내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세계들이다. 신기하게도, 그것들은 상호작용하며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도록 도와준다.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올바른 질문을 꾸준히 하는 것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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