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를 닮아가고 싶었던 정수진을 연기하면서, 캐릭터와 같이 저 자신도 커가는 느낌이었다” 배우 김희애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돌풍’에서의 연기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돌풍’에서 열연한 배우 김희애와 만났다.
‘돌풍’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 분)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 분) 사이의 대결을 그린 ‘정치물 대가’ 박경수 작가의 신작이다.
김희애는 운동권 인사에서 국회의원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올라선 여성정치인 정수진을 연기했다. 같은 운동권 출신 남편을 통한 재벌과의 연계를 뒤쫓는 박동호를 흔들기 위해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시해하는 것까지 서슴지않는 비정한 권모술수는 물론, 그릇된 초심을 끊임없이 자각하며 주변을 챙기는 인간적 모습까지 캐릭터의 다면적 성격을 매력적으로 호흡하는 모습에서 호평을 받았다.
또한 박동호 역의 설경구와 주고 받는 박경수 작가식 티키타카와 함께, 이미지부터 말투, 표정에 이르기까지 캐릭터의 정체성을 몰입감있게 그려내며, 42년 그의 연기인생 속 또 다른 전형이자 매력을 새롭게 드러냈다.
김희애는 특유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함께, ‘돌풍’과 자신의 캐릭터 ‘정수진’을 향한 애정어린 견해를 풀어냈다.
-박경수 작가와의 첫 작품, 어땠나?
▲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작가님의 작품이라 설렜다. 대본을 읽으면서 전작들을 뛰어넘는 깊이감과 복잡한 관계설정들이 느껴져 정말 놀라웠다.
그러한 대본과 함께 제게 전적으로 표현을 맡기셔서 기뻤다.
-복합적인 성격의 ‘정수진’, 새로운 연기시도로 즐거웠을 것 같은데?
▲너무 좋은 대사지만 좀 어려워서 처음에는 대사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쌓아가다보니 정수진의 서사에 바로 빠져들게 되더라. 위험한 신념의 박동호와 타락한 신념의 정수진.
처음에는 단순히 악당으로 생각했다면 나중에 괴물이 되는 순간에는 안쓰럽게 느껴지더라. 어쩌면 박동호를 닮아가고 싶었던 정수진을 연기하면서, 캐릭터와 같이 저 자신도 커가는 느낌이었다.
-박경수 작가의 말맛나는 대사들을 말맛 살리는 대사표현?
▲일상체 생활연기가 아니기도 하고, 빠른 속도로 싸우는 듯한 느낌을 줘야 하니까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다. 정수진의 서사에 녹아들다보니 자연스럽게 됐을 따름이다.
또한 상대역인 설경구 배우가 준비해온 호흡들과 함께 맞춰보면서 충분히 호흡할 수 있었다.
-아직도 대사에 대한 부담이 있을까?
▲강박관념인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발음이나 대사암기도 잘 안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면서 더 머리를 쓰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설경구, 김영민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우선 설경구배우와는 작품으로 호흡하던 와중에 대본을 받고 매력을 느껴서 제안했다. 국내배우도 인연이 없으면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 번씩이나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뻤다.
김영민 배우는 성실함과 매력을 모두 갖춘 배우로, 함께 연기호흡할 때도 그렇지만, 코믹과 슬픔, 야비함이 공존하는 캐릭터감을 매력있게 표현하는 모습에 놀랐다.
-장면마다 비치는 다양한 스타일링은 정수진의 감정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맞다. 출마연설이나 남편 사망 이후 첫 등장 등은 강렬하게 비쳐져야 하기에 비비드한 컬러감을, 대사가 많은 신에서는 베이직한 패턴의 심플한 디자인들을 많이 찾았다.
여성정치인으로서의 강렬하고 당당함을 컬러나 헤어스타일 측면에서 현실감있게 반영하려고 했다.
-캐릭터적인 호흡으로 정수진이 바라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박동호처럼 되고 싶은 게 아닐까 한다. 남편으로 인해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되고 부패한 돈에 엮이게 되면서 퇴색됐지만, 정의로움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한다.
그것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그러지면서 괴물이 돼간 것 같다.
-공개 직전부터 세 번이나 다시 봤다고 하던데?
▲원래 재미없으면 제 작품이라도 잠들곤 하는데, 이번에는 의무감 없이 실제로 세 번을 봤다. 볼때마다 놓친 부분이 다시 보이고, 대사마다 무게감이나 깊이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제대로 연기를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기도 하고 반성도 되더라.
-현실 정치와의 연관성 논란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반전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니 현실과의 접점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물론 다이내믹한 현실과 일견 겹쳐보일 수 있지만, 그러한 상상을 전했다는 것에만 그저 만족한다.
-새로운 모습을 위한 노력은?
▲42년간 연기하면서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기 위해서도,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도 연기를 해왔다.
물론 좋은 반응에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지금은 상대배우에게 더 좋은 상대역이 되자라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그러면 제 연기 또한 좋아지는 선순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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