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파리 올림픽은, 역대 최악의 성적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은 대회다. 아예 본선 티켓을 놓친 종목들이 많아 선수단 규모도 크게 줄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이고,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리는 스포츠에서 섣부른 예측은 오판을 불러올 뿐이다.
어려울 때 탄생한다는 영웅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태극전사들은 주위 목소리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마지막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암울한 전망은 밝은 기대로 바뀐다.
(서울=뉴스1) 문대현 기자 = 자타공인, 현재 ‘배드민턴 여제’ 자리에 올라 있는 안세영(22·삼성생명)이 두 번째 올림픽 도전에 나선다.
3년 전 도쿄에서 경험 부족 속 아쉬운 결과를 냈던 안세영은 이후 성장을 거듭하며 선수로서 최전성기를 맞이했고, 이제 올림픽 금메달로 정점을 찍으려 한다.
안세영은 풍암초등학교, 광주체육중학교를 거치며 일찍이 주니어 최강자로 이름을 날렸다.
중3 시절이던 2018년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시 현역 국가대표이던 이장미 등 성인 선수들을 연거푸 제압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중학생이 선발전을 거쳐 국가대표에 발탁된 사례는 지금까지도 안세영이 유일하다.
성인 레벨에서 곧바로 최고 선수가 되진 못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8강전에서 조기 탈락하며 세계 무대의 벽을 체감했다.
2021년에는 경기력향상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8강에서 천위페이(중국)에게 밀려 떨어졌다.
이후 국제대회에서도 천위페이와 허빙자오(중국) 타이쯔잉(대만), 야마구치 아카네(일본) 등 천적들을 넘지 못해 ‘미완의 대기’로 남는 듯했다.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주저앉지 않았고 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2022년 겨울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했다. 그 결과 기존의 장점이었던 체력은 더욱 향상됐고 스매시에 파워도 붙었다.
훈련 효과는 곧바로 성과로 나타났다. 안세영은 지난해 인도오픈부터 전영오픈, 세계선수권,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 금메달을 11개나 땄다. 특히 그동안 넘기 힘든 벽이었던 야마구치를 밀어내고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여자단식 랭킹 1위에 올랐다.
영광의 순간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천위페이를 상대하던 도중 오른쪽 무릎의 힘줄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당시에는 대회에 집중하느라 통증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으나 이후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부상 악령에 시달렸다.
선수 생명을 놓고 봤을 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중요했지만 파리 올림픽을 준비 과정이라 쉴 수 없었다. 안세영은 계속되는 통증을 참고 훈련과 대회 참가를 반복했다.
안세영의 투혼은 프랑스오픈, 싱가포르오픈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냈으나 몸 상태는 여전히 지쳐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3년을 기다려온 올림픽을 포기할 순 없다. 안세영은 그동안 부상을 안고 경기를 치른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무릎 통증에 적응하는 법을 찾으면서 과거 다소 방어적인 플레이에서 공격적인 플레이로 변신을 꾀했다.
자신이 지치기 전에 먼저 상대를 지치게 한 다음 강력한 스매시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다.
안세영은 “지금까지 힘든 훈련을 소화하면서 몸 상태를 80%까지 올렸다. 남은 20%는 대회 당일까지 차근차근 올릴 것”이라며 “지금까지 최악의 상황에서도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파리 올림픽에서는 훨씬 좋은 몸 상태로 뛸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파리 올림픽을 낭만적인 대회로 남길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한국 배드민턴이 올림픽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건, 1996 애틀랜타 대회 방수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안세영이 부상 투혼으로 금메달을 딸 경우 28년 만에 한국 배드민턴 역사에 새로운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
배드민턴 대표팀의 김학균 감독은 “(안)세영이의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로) 이미 정해져 있다. 그 길에는 부상 등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잘 극복했다”며 “나는 안세영을 믿는다. 파리 올림픽에서 분명 자기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신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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