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원, 베트남 이은 세번째 엔진부품 생산기지
코네티컷주, 美 최대 항공 엔진 산업 클러스터
PW부터 부품사까지 한 곳에… 주정부 지원 ‘든든’
HAU, 5년새 20% 성장…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글로벌 항공엔진 부품 생산기지 중 하나이자 미국 법인인 HAU(Hanwha Aerospace USA)를 ‘독자엔진 전초기지’로 택했다. 45년 간 갈고 닦은 항공엔진 부품생산과 조립에 그치지 않고 독자엔진 완제품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가장 핵심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HAU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코네티컷 체셔 사업장에서 ‘퓨처엔진데이’를 열고 지난해 사상 최대인 252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법인이 출범한 2019년 대비 약 20% 성장한 수치다. 지난해에만 1000억 달러(한화 약 138억)의 설비투자도 단행했다.
HAU는 2019년 9월 코네티컷 현지 항공엔진 부품업체인 이닥(EDAC)을 인수해 설립됐다. 창원, 베트남에 이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세번째 항공엔진 부품 생산기지로, 디스크, 블레이드, 회전축 등 주요 부품을 생산해 PW(프랫앤휘트니), GE(제너럴일렉트릭) 등에 납품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979년 공군 F4 전투기를 시작으로 40여년 간 항공엔진 사업을 지속해왔다. 그간의 엔진 생산은 엔진 부품 대부분을 GE 등 해외 업체로부터 키트 형태로 받아 조립하거나, 일부 부품 생산 면허를 받은 제품들에 한해서만 자체적으로 생산해 출고하는 형태로 이뤄졌지만 오는 2030년까지 독자 항공엔진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내 기업이 항공 엔진의 부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독자적으로 생산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 영국 등 극소수 국가가 보유한 첨단기술의 집약체이자 항공우주산업의 주도권을 결정짓는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한화가 항공엔진을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다면 한국의 항공산업과 방위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게다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업적 관점에서도 독자엔진 개발은 필수적이다. 해외 엔진이 탑재된 무인기, 유인기 등을 해외로 수출할 때 엔진 기술을 가진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기술 유출을 문제삼아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나 경쟁 국가에 승인을 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독자 기술을 갖게 된다면 이런 문제도 피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독자엔진 개발에 나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왜 HAU를 전초기지로 삼았을까. 가장 규모가 큰 주요 사업장은 물론 한국의 창원이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대주’가 된 데에는 HAU가 위치한 코네티컷의 지리적 이점이 자리한다. 한국과 베트남에서는 항공엔진이 보기드문 사업이지만, 코네티컷은 세계적인 항공엔진기업 PW를 포함해 항공 엔진 및 부품회사들이 한 곳에 모인 ‘클러스터’다.
미국 코네티컷주는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91번 국도를 중심으로 수백개의 항공 엔진 제조 업체들이 밀집해 있어 ‘항공 앨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가 미국 서부 테크 회사들의 대명사인 것처럼, 코네티컷의 항공 앨리는 미국 항공엔진 산업의 간판 주자로 꼽힌다.
2022년 기준 코네티컷 항공 앨리의 항공 엔진 및 부품 회사들이 창출해 내는 제조 일자리는 약 1만5500개, 연간 GDP 규모는 66억 달러(약 9조원)에 달한다. 미국 전체 항공 엔진 및 부품의 약 4분의 1이 코네티컷에서 생산되며, 항공 엔진 산업의 경제와 일자리 규모가 미국 내에서 가장 크다.
HAU와 같은 외투기업에 대한 주정부차원의 지원 정책도 촘촘히 갖춰져있다. 미국 내 타주는 물론 전세계로의 항공기업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것이 코네티컷 주정부가 지난 2014년 제정한 항공산업 재투자법이다. 코네티컷에 소재한 주요 항공 기업이 코네티컷 내 1억달러(약 1300억원) 이상을 재투자하면, 대규모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것이 골자다.
HAU는 코네티컷주가 오랜시간 쌓아놓은 환경적 이점을 알차게 활용하고 있다. 코네티컷에 위치한 PW 를 비롯해 현지 부품 업체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부품을 공급받거나 납품하고 있으며, 실제 HAU의 매출 절반 이상이 PW에서 나온다. 시설 투자와 산학협력 등을 통해 주정부로부터 보조금도 받을 수 있었다. 시설을 키우고 고용을 늘리는 만큼 지원이 커지니 투자를 망설일 필요도 없다.
폴 라이보 코네티컷 주정부 제조업 책임자(CMO)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항공엔진의 25%가 코네티컷에서 생산된다”며 “코네티컷주는 제조업을 지원하는 9개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으며 100명 이하 소규모 기업도 최대 25만달러(약 3억5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엔진 제작사인 PW에 부품을 공급하며 긴밀히 협업하고 있는 데다, 완성된 항공엔진 산업 생태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있는 사업장인 만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HAU가 독자엔진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또 HAU를 거점으로 원가 경쟁력이 높은 베트남 하노이, 45년 간의 생산 경험을 갖춘 대한민국 창원 등 각 사업장의 특화 전략을 통해 2032년까지 매출 2조9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아울러 HAU가 위치한 코네티컷주를 벤치마킹해 한국 창원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한국판 항공앨리’를 구축하겠다는 야심도 갖고 있다. 코네티컷 주의 환경 덕에 HAU가 빠른 시간 내 성장하고, 반대로 HAU가 코네티컷에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효과를 내는 선순환 구조를 한국에서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엔진 국산화에 성공하게 된다면, 코네티컷처럼 창원 사업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부품, 소재 업체 등이 생겨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한국의 새로운 주요 먹거리로 경제적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실제 글로벌 항공엔진시장 규모는 오는 2029년 150조원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전투기에서 민항기와 선박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항공엔진 분야는 ‘미래 먹거리’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며 “45년간 1만대 이상의 엔진 생산 역량과 글로벌에서 인정 받은 부품 기술력으로 대한민국의 독자엔진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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