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세게 부는 바람.’
표준국어대사전이 설명하는 ‘돌풍(突風)’의 뜻이다. ‘갑자기 세게 부는’ 바람은 순식간의 힘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쓸어버리고, 이를 맞는 세상이 어떤 대처도 할 수 없게 한다.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은 세상을 향해 ‘갑자기 세게’ 불어닥쳐 어떤 대처도 무기력하게 하려는 이들이 충돌하는 이야기이다.
‘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 ‘귓속말’ 등 전작을 통해 엇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박경수 작가의 신작으로도 화제를 모은 ‘돌풍’은 이번에도 서로의 치명적 약점을 물어뜯으려는 이들을 내세웠다.
작품은 정경유착의 부패 권력을 처단하기 위해 나선 국무총리와, 재벌과 부당하게 손을 잡은 행위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해 그를 막고 나선 3선 의원 출신 경제부총리의 명운을 건 치열한 수싸움을 그리며 정의와 권력의 의미를 묻는다.
국무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지키고 부당한 권력을 쓸어버리기 위해 ‘대통령 시해’라는 위험을 택했다. 이를 알아챈 경제부총리 역시 자신의 치부를 들키지 않고 권력을 얻으려 국무총리에 맞선다. 한때 세상의 정의를 외친 학생운동권 출신이기도 하다.
세상은 이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돈의 힘으로 세상을 주무르는 재벌그룹 회장과 그 아들이 있고, 스스로도 권력을 지켜가려는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무총리를 돕는다. 서울지검장은 국무총리의 친구이면서 그 못지 않게 강한 신념으로 “성역 없는 수사”를 밀고 나아간다. 공천을 따내기 위해, 경제적 이득과 이권을 위해, 가족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정치인들과 법관들과 검사들도 이들 주변에 기생한다.
과연 이들 가운데 정의로운 이는 누구인가.
드라마는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만 앞으로 내달려가는 이들의 모습을 쉴 틈 없는 속도감으로 그려내며 결국 세상에 남겨지는 정의는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권력을 소재로 기획한 적 없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려 했다”는 박경수 작가는 다만 “인간이 부딪치는 문제와 모순이 권력과 연관되어 있다”면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고 밝혔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돌풍’이 그려내는 세상과 인물들은 그대로 현실이 된다.
작가는 “권력이 아니라 몰락한 인간을 그린다”고 했다.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을, 어찌됐든, 불법과 또 다른 범죄의 힘으로 바꿔가려는 인간, 그에 맞서 자신의 권력을 지켜내려는 아니 치부를 가리려 역시 같은 길을 걷는 또 다른 인간. 이들 모두가 발현해내는 극한의 욕망은 박경수 작가의 그 같은 현실감각에서 탄생한 것인지 모른다.
이를 재연해내는 주역은 배우 설경구와 김희애. 지난해 개봉한 영화 ‘더 문’과 개봉을 앞둔 영화 ‘보통의 가족’을 거쳐 세 번째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돌풍’이 일으키는 힘의 중심에 서 있다.
설경구는 여느 작품에서보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드러내고, 김희애는 벼랑 끝에서 절망과 욕망을 넘나드는 몸짓과 표정을 드러낸다.
이들이 그려내는 극한의 욕망이 아니었다면 ‘돌풍’은 거칠면서도 지나치게 극적 요소를 부각해가는 이야기에 그쳤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박경수 작가 특유의 문학적인 은유와 비유 가득한 대사가 전작들에서처럼 큰 힘을 발휘하는데, ‘돌풍’의 가장 커다란 미덕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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