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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무조건적 사랑은 힘들어 #여자읽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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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부모라니, 별로라고 생각했다. 어느 가수 출신 변호사의 아버지가 그랬다는 것처럼 “나는 너의 전부를 사랑하지, 네가 잘할 때만 사랑하는 게 아니야”라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어떤 모습의 아이라도 지지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1학년 공개수업을 갔을 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부모가 되기 어렵겠다는걸. 교실 뒤편에 다른 부모들과 나란히 서서 내 눈은 온통 아이가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규칙을 잘 따르면서 선생님이 내주는 과제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에 쏠려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받는 칭찬 스티커 개수에 민감해 할 때 ‘왜 아이들을 평가하고 줄을 세우냐’라고 분노하면서도, 그래서 오늘은 스티커를 몇 개나 받았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내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답답하고 급해졌다. 아이에게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네 의견을 존중해’라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 이중 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아이가 잘하면 예뻤고 못하면 못나 보였다. 최초의 타인인 엄마가 보내는 시선을 아이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아이는 글로 먹고사는 엄마가 일기 검사하는 걸 제일 싫어했다. 아이가 쓴 일기를 읽고 나는 “잘 썼네”라고 기계적이지만 호들갑스러운 칭찬을 한 다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문장만 더 써보면 어떨까?” 그때마다 아이는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 “엄마는 맨날 냉정하게 평가해!” “엄마 때문에 더 써야 하잖아!” 그럼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이것보다 훨씬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 엄마는 그걸 끌어내 주려 하는 것뿐이야. 너를 도와주는 거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한 줄을 더 쓰고 일기장을 쾅 덮었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일기를 썼다.

양육자 상담에서 심리 상담사는 내게 물었다. 그렇게 글 한 줄 더 쓰게 해서 아이가 얻는 게 뭐가 있냐고. 말로는 ‘아이가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가졌으면 해서’라고 했지만 내게는 아이가 더 완성도 높은 글을 썼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내가 정한 ‘잘 쓴 글’의 기준이 있었다. 상담사는 말했다. 아이는 이미 자기 나름대로 일기를 써내는 미션을 스스로 마쳤는데 거기에서 엄마가 한 줄 더 써보라고 하면 아이는 결국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진다고. 상담사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렇게 덧붙였다. “어머니, 아이의 성취는 아이의 것이에요.”

천선란 작가가 쓴 단편소설 〈어떤 물질의 사랑〉은 알에서 태어나 배꼽이 없는 아이 ‘라현’에 대한 이야기다. 배꼽을 찾아달라고 우는 7살 라현에게 엄마는 되묻는다. 배꼽이 왜 꼭 있어야 하냐고. 세상에는 원래 그런 것도 당연한 것도 없다고. 생식기가 없는 라현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성별로 변한다. 자라는 동안 라현은 여자가 되기도 하고 남자가 되기도 한다.

라현이 만나는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라는 구분을 떠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상하고 독특하고 다양하다. 겉으로 다양하지 않은 척 하고 있을 뿐이다. 라현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규정하고 규명하려는 시도를 그만둔다. 그런 라현 앞에 어느 날 몸에서 비늘이 떨어지고, 책을 좋아하며, 휴대폰이 없고, 글자가 특이한 고향에서 온 ‘라오’가 나타난다. 지구 사람의 기준에서 봤을 때 외계인인 라오는 라현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구 행성의 개체들은 사물을 단순화해서 분류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가 보기에 지구에서 같은 생명체는 단 한 개체도 보지 못했는데.

나는 아이를 보이지 않는 저울 위에 올려놓고 끊임없이 점수를 매긴다. 이건 합격, 이건 불합격. 아이가 보통과 평범의 범주를 벗어나면 외계인이라도 될 것처럼 전전긍긍 안달복달했다. 내가 평생 나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고 통제했다.

라현이 마주한 ‘몸’이라는 난제에 대해 라현의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어쨌든 너는 이 세상에 있잖아, 그런데 무슨 진실이 더 필요해?”라고 말하면서. 이상한 엄마 덕분에 라현은 자신의 이상한 상태를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인다. 나아가 타인의 이상함을 편견 없이 포용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라현의 엄마라면 어땠을까. 진작에 배꼽을 뚫어놓지 않았을까.

“이 지구에 같은 인간은 없”으며 “모두가 다 서로에게 외계인”이라는 라오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다 다르고 이상한 존재들인데 왜 나는 평균 이상과 평균 이하의 경계를 나누고 내가 생각하는 틀 속에 아이를 가두려 했을까. 그게 정말 아이를 위한 게 맞는 걸까. 무엇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사랑이 맞을까. ‘우주를 가로지르는 사랑’에 대한 소설이 내게는 육아에 대한 소설로 읽혔다.

#여자읽는여자

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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